남·북 성명의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7·4남북공동성명이 있은 지 반주-. 정치의 중심인 국회나 행정부도 성명 이후에 대처하는 방향을 세우지 못한 채 그 파장에 휘말려 있는 느낌이다. 극소수 이외에는 남북간의 극비회담을 알지 못했고 성명이 예상을 훨씬 앞지른데다 그 배경이 아직도 베일에 가려있기 때문인 것 같다. 김종필 총리가 이번 남북접촉에 어느 정도 「코미트」되었을까 하는 것이 화제에 적잖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김 총리의 국회답변은 취임후 두 번째이고,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는 취임초보다 큰 이슈. 그러나 김 총리의 톤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 이것은 행정부가 받고있는 7·4성명의 착잡한 쇼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들.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던 날 하오에 열렸던 국무회의에서도 공동성명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며 차관회의 등 다른 공식회의에서도 「노·터치」. 다만 외무·법무·문공·통일원 장관은 다른 각료보다 이 사실을 먼저 알았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워낙 뜻밖에 나타난 큰 문제라선지 각 부처에서는 성명이 나온 후 다소 혼선을 빚기도 했다.
문공부는 성명이 나오던 날 「남북공동성명은 무엇을 뜻하나」란 홍보책자를 만들고 그 안에서 처음으로 북한이란 호칭을 사용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다음날에 있었던 각 부처 공보관회의 지시사항 속에 『김일성과 그 체제를 비방하지 말 것』을 넣었다가 뺐다. 이 지시사항은 실무자선에서 기안되어 공보처장 전결로 처리된 것인데 뒤에 윤주영 장관이 『공동성명에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기로 한 것을 어떻게 「김일성과 그 체제」라고 해설할 수 있느냐』고 해서 취소.
문교부 쪽에서도 즉각 각급 교과서를 개편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가 자라목처럼 오그라들었으며 국토통일원은 『얼떨떨한 분위기』에서 북한의 취약상 선전을 중단한다는 정도의 소극적 태도만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외교방향전개에 외무부는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 남북성명의 방향에 맞춰 외교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로 여기저기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데 북한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종래의 외교방식을 계속하긴 힘들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많다.
유엔 대책만 해도 올 가을 총회에서는 불상정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어 전면검토가 가해지고 있다. 특히 유엔에서의 지지획득을 위해 4, 5개 지역에 보내기로 했던 친선사절단 파견도 동남아 외에는 재검토하기로 했다.
개원식 다음날 성명에 마주친 국회는 벽에 부딪쳐 있던 의사일정조정을 뒤로 두고 성명의 내용과 배경을 알아보는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은 공동성명의 성격·법적효력 등 「성명 내」문제와 이를 계기로 한 비상사태, 보위법 철회, 부수되는 법개정 등 「성명 외」문제까지 이르고 있다.
국회에서의 질문 답변은 처음 이후락 중앙정보 부장이 성명을 발표하던 날의 흥분된 분위기와는 달리 신중하고 경계론적인 것이 많았다.
이 부장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법적 제도적인 면에서 어떤 것은 바꾸고, 어떤 것은 보완하고 신설해서 새 시대에 알맞게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했으나 김종필 총리는 국회답변에서 『그것은 이 부장의 먼 앞을 내다본 사견이며 반공법·국가보안법 등을 개정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부장이 남북 서로가 「괴뢰」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의원들은 질의에서 대부분 「북한」이란 말을 썼으나 박병배 의원(신민)같은 이는 북괴란 말을 그대로 쓰기도.
강근호(신민)의원 같은 이는 남북 성명에 관해 질의하면서 가평의 화재사건·회갑 잔칫집 손님 등 엉뚱한 얘기를 끌어들여 문제의 핵심을 흐리기도 하고.
공화당은 성명과 앞으로의 남북대결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고 궁극적으로는 남북대결에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탐색, 대충 여야 중진회담→여야 영수회담→효율적인 지원체제의 확립이라는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
백남억 당의장은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직전 김홍일 신민당수를 방문, 사전통고를 하면서 여야중진회담을 제의했고 여야 총무선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이 같은 단계와 병행해서 정부·여당간의 협의체→각계대표를 포괄하는 협의체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는 것.
신민당은 원칙적으로는 환영하면서도 소외됐다는데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
김홍일 당수는 백 공화당의장의 통고를 받은 뒤 국회에 나와 간부회를 열고 잇달아 4시간 동안 회원총회에서 토론했으나 당책을 정하지 못했다. 그 다음날 열린 긴급정부회담도 역시 결론을 보류.
원칙적으로 남북간의 대화에 대한 찬성론이 많았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춰 내용을 충분히 알고 검토해 봐야겠다는 것.
질문에서 소속회원끼리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한 가닥 흐름은 비상사태의 해제, 앞으로의 사태진전에 대한 야당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남북대결의 새 정치 질서라는 야당의 구상이 어떤 것이며 그것이 75년과 어떻게 연관될 것인가를 경계하고 있다.
작금의 정계쇼크는 7·4성명이 가져올 긴 정치파장의 시작에 불과한 것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