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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탐구] 경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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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경마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스포츠(레이스)와 오락(베팅)이 결합돼 '레저의 꽃'으로 불리는 경마.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쾌속 질주하면서 지난해 매출액(베팅액)이 7조6천억원을 넘어섰다. 연인원 1천6백만명이 경마장을 찾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도박 심리를 부추기는 사행산업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불황을 모르는 산업=하늘이 잔뜩 찌푸린 8일 오후 3시20분 과천경마장. 6만5천명을 수용하는 6층짜리 관람대는 경마팬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출발 총소리가 나고 이 날의 아홉번째 경주(1천8백m)가 시작되자 팬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열마리의 말이 4코너를 돌아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팬들의 환호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이 돈을 건 말 이름을 연호했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2분여 만에 승패가 가려지자 흥분 상태는 금방 식었다. 이 경주에 베팅된 돈은 56억9천만원. 순서에 상관없이 1.2위 두 마리를 맞히는 복승식에 돈을 건 사람들은 원금의 9.3배를 챙겼다. 그러나 승부가 빗나간 대부분의 고객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경마의 성장세가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경마는 1994년 1조7천억원으로 매출액 1조원 시대를 연 뒤 8년만인 지난해는 무려 7조6천4백억원을 기록했다. 금호그룹의 지난해 매출액 7조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경마일 하루 평균 8백22억원어치의 마권(馬券)이 팔렸다. 당기 순이익은 3천8백20억원이다.

이 때문에 경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마사회 관련 정부 부처가 농림수산부-체육청소년부-농림부로 바뀐 것도 노른자위를 서로 차지하려는 부처 간 줄다리기의 결과다.

경마 인구는 지난해 연인원 1천6백28만명으로 프로야구 관중(2백60만명)의 여섯배가 넘는다. 3천5백대를 수용할 수 있는 경마장 주차장은 경마가 열리는 토.일요일마다 오전 10시면 가득 찬다.

이처럼 경마에 고객들이 몰리는 것은 잘만하면 한몫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동물과 사람이 하나가 돼 승부를 펼치는 경마는 흔히 '마칠인삼(馬七人三)'의 경기로 불린다.

말의 능력 70%에 기수(騎手)의 능력 30%가 합쳐져 순위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승부 예측이 어려운 만큼 당첨자에게는 돈벼락이 쏟아진다. 5백배 이상의 고액 배당이 지난해만 열다섯번 있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레저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 5일제 근무가 확산되면 경마는 더욱 팽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관 효과도 상당=경마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경주마를 생산.육성하는 축산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경주마를 생산하는 목장은 전국에 1백7개.

한 해 1천여두의 말을 생산하며 그 중 5백여두가 경주마로 데뷔한다. 과천경마장을 주름잡던 외국 말의 숫자가 주는 반면 국산마는 경주마의 74%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 오권실 국장은 "말 한마리의 가격이 2천만원을 넘으면서 제주도 뿐만 아니라 이천.여주.원주 등 내륙에서도 생산에 가세하는 농가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마 정보를 안내하고 우승 유력마를 '찍는' 예상지(豫想紙)시장도 연간 3백억원대로 커졌다. 35개 업체가 한 부 1천~3천원짜리 예상지를 주 2회 40만부씩 발행하며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용 효과도 상당하다. 직원.기수.마필 관리사 등 마사회가 직.간접으로 고용하는 1천5백명의 직원과 별도로 토.일요일마다 과천 경마장에 4천5백명, 장외발매소에 2천5백여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일한다.

이들은 주차안내.장내 질서 유지.마권 판매 등을 맡는다. 일당 4만~6만원으로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 부업으로 자리잡았다. 경마장 주변의 10여개 사설 주차장도 하루 7천명의 단골이 몰려든다.

경마는 지방 재정에도 한몫하고 있다. 과천시의 경우 지난해 일반회계 세입의 절반인 1천1백25억원을 경마장에서 거뒀다. 과천시 어봉천 세무과장은 "과천시가 재정자립도 96.3%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수위를 차지한 것은 경마장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자치단체는 경마장.장외발매소 유치에 적극적이다. 공해가 발생하지 않고 특별한 투자나 지원을 하지 않아도 세금이 굴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2005년 4월 개장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부산경마장(가칭)은 세수 확보 때문에 행정지도까지 바뀐 경우다.

37만여평 규모의 경마장은 부산 강서구 범방동에 들어설 계획이었으나 인접한 경남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시.도 경계를 부산 쪽으로 1㎞ 옮겨 현재는 부산 범방동과 경남 김해시에 정확하게 절반씩 나눠져 있다.

◆부정적 인식 극복이 과제=과천경마장에 경마공원이 들어서고 일부 장외발매소는 평일에 결혼식장 등으로 지역 주민에게 공간을 개방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잊혀질 만하면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해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경마로 전 재산을 날렸다는 팬들도 간간이 나타난다. 정부가 도박을 부추긴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한 경주당 마권 구입상한선이 10만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런 제한이 되지 못한다.

경마장 주변에서 큰 손(錢主)들이 벌이는 사설경마(일명 맞대기)도 이미지를 해치는 요소다. 이같은 부정적 요인에다 교통체증 등을 이유로 시민.지역단체들은 장외 발매소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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