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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17명 소사|가평 등잔에 석유인줄 알고 휘발유 부어…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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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평=김재혁·원태연 기자】1일 밤 9시 15분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하천1리 120 사정애씨(29·여)집 안방에서 사씨의 장남 조길호군(11·상천국민교 5년)이 등잔에 석유인줄 알고 휘발유를 잘못 붓고 성냥불을 붙이다가 불이 나 방안에서 놀던 동네어린이 20명 가운데 17명이 불에 타 숨지고 1명이 온몸에 중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하다. 동네꼬마들은 이날 하오 8시 30분쯤 환갑잔치를 준비하던 이웃 남궁길씨(32) 집에서 저녁밥을 먹은 뒤 사씨집 안방으로 몰려가 솜이불 1장을 방바닥에 깐 뒤 방 한가운데 사기로 만든 석유 1홉들이 호롱불을 켜 놓고 수건을 돌리며 술래잡기놀이를 하다가 이 같은 참변을 당했다.

<경위>
잔칫집에서 저녁밥을 먹은 꼬마들은 하오 8시 30분쯤 사씨집으로 몰려갔다.
길호군이 높이 50m의 나무받침대에 놓인 석유 호롱에 불을 밝혔고 다른 꼬마들은 방바닥에 깔린 솜이불 위에 둘러앉아 수건돌림 술래잡기 놀이를 시작했다. 수건이 5∼6바퀴쯤 돌아간 밤 9시 15분쯤 석유가 다 닳은 호롱불이 가물가물 꺼져 갔다.
길호군은 곧 마루로 나가 마루 밑에서 휘발유가 1되쯤 든 양철통을 찾아와 석유인줄 알고 호롱에 부었고 옆에 앉았던 이홍기군(11·상천국5년)이 성냥불을 켰다.
순간 호롱과 양철통에 든 휘발유에 불이 『확』 붙어 사방으로 불길이 튀었다.
마루로 통하는 문 가까이 앉았던 장승수군(8·상천국2년)은 잽싸게 뛰어나왔고 놀란 길호군은 불붙은 휘발유통을 방바닥에 던지고 뛰어 나왔다.
다른 꼬마들도 한꺼번에 일어나는 통에 호롱이 쓰러지면서 솜이불에 휘발유가 엎질러졌다.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한 꼬마들은 급한 김에 이불 속에 얼굴만 파묻고 허우적거렸다.

<원인>
불이 나자 당황한 꼬마들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오지 못하고 불덩어리가 된 이불 속으로 파고 든 것이 떼죽음을 불러일으켰다.
사씨집 안방은 가로 2m, 세로 4.5m쯤 되는 시골집 방으로는 큰 편이었다. 뒷마당으로 통하는 벽에는 폭 1m의 문이 2개나 있었으나 과부 몸으로 사는 사씨가 평소 안으로 굳게 닫아걸어 놓아 꼬마들이 열지 못했다. 또 마루 쪽으로 난 2개의 미닫이문은 문틀이 약간 휘어 평소에도 열기가 수월치 않아 활짝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꼬마들이 급한 나머지 서로 이불 속으로 머리를 숨겼다가 불길이 직접 몸에 닿아 연약한 살을 태웠다.
문제의 휘발유는 길호군이 한 달 전쯤 마을 안 길을 닦은 「불도저」운전사로부터 얻어 와 마루 밑에 둔 것. 길호군은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얻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사기호롱은 석유1홉이 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조그마한 것이었다.

<구조>
사씨 뒷집의 엄인순씨(46·여)가 마침 부엌에 물을 뜨러 갔다가 치솟는 불길을 보고 『불이야』소리치면서 달려나갔다.
사씨 앞집의 이병삼씨(32)도 거의 같이 달려나가 동네 가운데 빈터의 비상종을 마구 두드리면서 『불났다』고 소리쳤다. 잔칫집에 모였던 어른들이 사씨집으로 달려갔을 때는 방안은 온통 시뻘건 화염에 싸였고 불덩어리가 된 솜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은 꼬마들은 『엄마』를 불렀으나「러닝샤쓰」와 「팬츠」만을 입은 시골꼬마들의 여름 옷차림이어서 몸뚱이에 불길이 닿았다.
20분만에 가까스로 불길을 잡은 이씨 등이 방안으로 뛰어들어 꼬마들을 끄집어냈으나 유금자양(8·상천국2년)과 김광필군(11·상천국5년) 등 2명은 이미 불타 죽었고 다른 꼬마들도 온몸이 빨갛게 익어 실신했다.
어른들은 꼬마를 들춰업거나 「리어카」에 싣고 2백m쯤 떨어진 경춘가도로 달려나가 지나가는 차를 향해 구조를 청했다. 30분이 지나도록 1대의 차도 서 주지 않자 주민들은 길 가운데를 가로막고 발을 굴렀다. 밤 10시가 지나 겨우「트럭」과 「택시」를 잡아 가평쪽으로 6km쯤 떨어진 육군 제59 후송병원으로 가 응급치료를 했다. 상오 1시쯤 병원측은 2대의 「앰블런스」로 꼬마들을 서울 위생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 닿자마자 조철호군(4)과 장한수군(11·상천국 5년)이 숨졌다. 위생병원측은 야간진료「팀」을 총동원, 16명의 치료에 나섰으나 손이 모자라 상오 2시쯤 남궁록군(8·상천국 2년) 등 11명은 「메디컬·센터」로 옮겼다. 입원한 이민기군(7·상천국 l년) 등 잇달아 14명이 숨지고 3일 상오 7시 30분쯤 이군의 형 홍기군(11·상천국 5년)이 숨져 사망자는 모두 17명으로 늘어났다.
사망자 (17명) ▲조순호양(7·상천국민교 1년·사정애씨의 장녀) ▲조철호군(4·사씨의2남) ▲이근희양(11·상천국교 4년·이병무씨의 2녀) ▲이태식양(8·상천국교 1년·이씨의3녀) ▲김광필군(11·상천국교 5년·김영주씨의 2남) ▲김광연양(8·상천국교 2년·김씨의 3녀) ▲이춘기군 (9·상천국교 3년·이병삼씨의 장남) ▲이미자양(11·상천국교 5년·이씨의 장녀) ▲이미옥양 (7·이씨의 2녀) ▲신성표양(10·상천국교 3년·신영준씨의 2녀) ▲조중대양(11·상천국교 5년·조홍희씨의 장녀) ▲유금자양(8·상천국교 2년·유흥덕씨의 4녀) ▲장한수군(11·상천국교 5년·장보현씨의 장남)▲이민기군 (7·상천국교 l년·이병원씨의 2남) ▲이홍기군(11·상천국교 5년·이씨의 장남) ▲박춘실양(11·상천국교 5년·박순용씨의 2녀) ▲이병윤군(8·상천국교 2년·이희수씨의 장남)
중상자 (1명) ▲남궁녹군(8·상천국교 2년·남궁길씨의 3남)
경상자(2명) ▲조길호군(11·상천국교 5년·사정애씨의 장남) ▲장승수(8·상천국교 2년·장보현씨의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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