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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처리 또 해 넘겨 한국판 셧다운 올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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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6일 국회 정무위 회의장에 금융위·공정거래위 등의 2014년도 예산안 자료들이 쌓여 있다. [오종택 기자]

예산국회가 열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6일 ‘2012년 회계연도 결산안’을 의결했다. 법정 처리 시한(8월 31일)을 87일 넘겼다. 결산 심사가 마무리되면서 운영위·국방위·정무위 등 10개 상임위는 정부가 제출한 소관부처별 예산안을 상정했다. 보건복지위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임명 논란으로 예산안을 상정하지 못했다.

 예결위는 이날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이어 29일부터 7일간 정부를 상대로 종합정책질의를 하고, 다음 달 9일부터 예산안 계수조정소위원회를 가동해 다음 달 16일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정대로 처리된다 해도 법정기한(12월 2일)을 넘기게 된 상황인데, 실제론 16일에 처리될 가능성도 낮다는 게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서 나오는 관측이다. 예산안에 대한 양당의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날 ‘2014년 예산안 심사방안’을 발표했다.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규모 축소 ▶복지 지출을 위한 재원 마련 ▶권력형 국가기관에 대한 예산 통제 ▶재정지출 확대 ▶지방재정 살리기 등이 민주당의 5대 원칙이다. 구체적으론 부자감세를 철회해 7조1000억원을 마련하고, 창조경제를 위한 예산 5조원을 삭감한 뒤 이 예산을 복지 지출 확대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국가보훈처의 대국민교육사업 예산과 개도국 새마을운동 확산,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조성에 필요한 예산 등도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이 깎으려는 예산에 대해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산이라며 정부 원안을 고수해 내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특검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도 변수다. 민주당이 특검 도입과 예산안 통과를 연계할 경우 16일까지 처리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국회 안팎의 예상이다.

 최악의 경우 예산안의 연내 처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새누리당에서 나오고 있다. 만약 예산안이 새해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준(準)예산’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2014년도 예산안이 여야 협상 실패로 처리되지 못해 연방정부가 16일간 셧다웃(shut down·정부의 업무정지)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이 혹시나 우리 헌정사에 50년 동안 단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준예산’ 사태가 오지 않나 걱정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사태가 절대 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19대 국회가 나라를 빈사(瀕死) 상태로 몰아가는 최초의 국회로 기록되는 건 여야 정치권의 공멸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준예산은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전까지 확정되지 못했을 때 정부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전 회계연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적인 예산이다. 준예산에 의할 경우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357조7000억원의 재정지출 계획 가운데 140조원 이상의 지출을 할 수 없게 된다. 가급적 최소한 집행해야 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에 대해선 돈을 쓸 수 없다. 예산 집행 전부가 동결되는 미국의 셧다운보다는 한국판 ‘셧다운’이 낫다고 해도 재정으로 지원하는 65만 개의 일자리 사업, 23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 17조원 상당의 연구개발(R&D) 예산, 양육수당과 실업교육 예산 등 복지 예산에 대한 재정 지출이 막힌다.

 이에 더해 기초연금, 대학등록금 지원, 무상보육,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난방비 지원 등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새누리당의 지적이다. 최 원내대표는 “노인·중산층·서민들에겐 젖줄과도 같은 생활 지원이 끊기게 된다”며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복지재원 조달 방법과 재정운용에 대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한다면 예산안 처리가 늦춰질 이유가 없고, 준예산 편성 사태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글=김경진·하선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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