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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주당을 고쳐 걷고 옥 계를 다시 쓸며,
계명성 돋도록 고초 앉아 바라보니
백련 화 한가지를 뉘라서 보내 신고
이리 좋은 세계 남 대되 다 뵈고자
유 하 주 가득 부어 달더러 물은 말이
영웅은 어데 가며 사선은 긔 뉘러니…』
송 강 정철의<관동별곡>뒷 귀 절이다. 자연의 아름답기로는 관동 만한 데가 없다.
관동의 어디라도 좋다. 천연의 원시림이 있고, 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의 맑은 물이 있고…. 예부 터 시인이 관동의 풍경을 즐겨 노래하고, 속세의 먼지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관동을 즐겨 찾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번번이 산불이 일어났다. 지난봄에도 큰불이 있었다. 이번에는 또 내설악 가야 동 계곡에서 불이 났다.
산불이 있을 때마마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예부 터 가장 무서운 게 산불과 홍수로 되어있다.
막을 길이 없다는 뜻에서다. 그뿐 아니라 그 속에서는 목숨조차 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산불 때는 초속 13m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때에는 불이 번지는 속도도 풍속과 거의 맞먹는다.
더 우기 산 속이 가뭄에 바싹 말라있었다. 사람의 걸음으로도 이 속에서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올림픽」단거리선수도 1초에 10m밖에 못 달리기 때문이다.
이번 불은 3일 동안 계속 번져 나갔다.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만도 하다.
자연이 얼마나 결판났는지를 염려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얘기일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 아까운 원시림이 잿더미 속에 묻혀버렸다는 것이 그저 아까울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끔찍한 일이 등산객의 담뱃불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불이 났다고 신고를 받은 산장주인이 즉각 당국에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도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진화작업의 원 시성이다. 보도에 의하면 예비군 등 2백 명이 밤을 새워가며 진화에 힘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글이 무엇을 가지고 산불을 끄려고 했었을까. 맨주먹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스모키·마운틴」의 산불 소방대의 시설을 새삼 부러워 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가 오고, 바람이 간 다음에야 겨우 불이 꺼졌다는 것은 그저 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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