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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라이스와 '주권국가'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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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했다. 1박2일 동안 라이스는 북핵문제, 한.미동맹에 초점을 맞췄다. 독도 문제로 미국의 아시아 주요 동맹국인 한.일 간 감정대립이 격화된 상황을 충분히 감안한 듯, 그 같은 이슈엔 극도로 언급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는 입장만은 거듭 밝혔다.

한국 정부가 '이웃 나라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지도적 위치 추구는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라이스의 이런 태도는 외교적으로 한국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라이스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선정 이전에 안보개혁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고 상기시켰다. 또한 "미국이 일본.한국 모두와 좋은 동맹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매우 중립적인 입장도 추가했다.

라이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양 동맹국을 모두 중시하고 있으며, 9.11테러 후 변화한 환경에서 외교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 일본의 주도적 기여를 더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이스는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의 파병에 대해 매우 감사한다는 발언을 비롯, 한.미동맹의 건강성을 강조하는 언급을 수시로 내놓았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이 같은 가치를 공유한 민주국가이자 미국을 매개로 한 준동맹국으로서 상호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6자회담 내에서 미국과 확고한 정책적 공조를 할 수 있는 국가가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외교전략적으로 일견 이해가 간다.

물론 라이스는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 정부에도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정책적 지지를 넓혀놓는 발언을 내놓았다. 가장 주목되는 발언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선제공격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폭정의 전초기지'나 '악의 축' 발언 등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며 대북 유화책이 탄력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라이스는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 정책을 재천명하면서 북한의 6자회담 무조건 복귀와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선 과거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북한의 비민주적 정권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스 장관의 일본 방문기간 중 일본은 미국과 철저히 공조했다. 일본은 북한이 오는 6월까지 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것을 제의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핵문제와 연계해 일본을 급부상시키는 정책을 펴는 반면 중국은 견제하고 있다. 미.일 양국이 중국을 겨냥한 공동의 전략 목표를 세우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녀를 맞는 중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특히 중국은 최근 반국가분열법을 채택, 대만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상태다. 미국의 자유확산 정책에 자유롭지 못한 중국이 대만문제 등과 맞물려 북핵문제에서 미국과 전략적 타협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양국이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번영을 위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북핵 해결 후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은 장기적 차원에서 다자 안보 틀에 대한 전략적 고려를 구체화해야 한다. 라이스의 아시아 순방 후 이런 필요성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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