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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계 수준 강등 맞짱 … 이집트·터키 파열음 증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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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집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집트와 터키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양국이 서로 부대사급으로 외교 관계를 격하하면서 ‘강 대 강’ 대결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이집트였다. 이집트 외무부는 23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도발적인 비판’을 이유로 터키와의 관계를 부대사급으로 격하하고, 이집트 주재 터키 대사에게 출국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또 현재 자국에 들어와 있는 터키 주재 이집트 대사를 영구 소환한다고 덧붙였다. 이집트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터키 정부가 이집트의 국익에 반하도록 여론몰이를 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국정 불안을 꾀하는 조직들의 회합을 지지했다”며 터키의 무슬림형제단 지지에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이에 터키도 즉각 이집트와의 관계를 부대사급으로 격하한다고 맞받아쳤다. 동시에 터키 주재 이집트 대사를 외교상 기피인물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로 선언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사과나 유감의 뜻은 전혀 표하지 않은 채 이집트 정부를 쿠데타 세력으로 폄하하며 “민중의 뜻에 반해 정권을 잡은 이들을 절대 존중하지 않겠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지난 7월 무르시 축출 전까지만 하더라도 양국 관계는 돈독했다. 2011년 2월 민중봉기를 통해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후 가장 처음 이집트를 방문한 국가 정상이 바로 에르도안 총리였다. 특히 그와 정치적 기반을 같이 하는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가 집권한 이후 양국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군부가 무르시를 쫓아내고 정권을 잡은 뒤 터키가 격렬한 비판을 계속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8월 이집트 정부군의 친무르시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수백 명이 숨진 뒤 터키는 항의의 의미로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이집트 역시 터키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였다. 터키는 9월 초 다시 이집트로 대사를 복귀시켰지만 이집트는 지금까지 자국 대사를 보내지 않고 있던 터였다.

 터키가 유독 이집트 군부 비난에 열을 올리는 데에는 중동의 강력한 지도자로 거듭나길 바라는 에르도안 총리의 야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아랍의 봄 이후 각국에서 이슬람 세력이 집권하자 이를 토대로 리비아·이집트로 이어지는 강력한 이슬람 리더십 전선 구축을 꾀했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 기반이 파탄 나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이집트 군부 역시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앞서 미국이 무르시 축출을 쿠데타로 규정하며 비판적 태도를 보이자 바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양국의 신경전이 아랍권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화통신은 “아랍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통해 지역 안보 위협에 공동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내년 예정된 이집트 선거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치러질 지가 양국 관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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