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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직원 90억 횡령 … 잇단 대형 금융사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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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KB국민은행 직원이 국민주택채권 90억원어치를 횡령한 일이 드러났다. 올 들어 이 은행에서 터진 세 번째 대형 금융사고다.

 국민은행은 24일 “자체 조사한 결과 본점과 영업점 소속 직원 2명이 공모한 뒤 채권을 위조해 돈을 빼돌린 혐의가 포착돼 최근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본점 주택기금부 소속 박모 차장은 2009년부터 국민주택채권 90억원어치를 강북의 한 영업점 창구 직원을 통해 현금화했다. 그런데도 최근 내부 제보가 있기까지 은행 측은 까맣게 몰랐다. 국민은행에선 지난 6월 사기범이 은행 직원의 협조로 위조수표를 현금으로 바꾼 ‘100억원 위조수표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엔 전 도쿄지점장이 불법 대출을 해 주고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국내에 들여온 의혹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25일부터 국민은행에 대한 특별검사에 들어간다. 이번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과 보증부대출 이자 과다 수취,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금감원이 한 은행에 대해 세 개의 다른 사안으로 특검을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 사건의 직접적 원인은 ‘허술한 내부 통제’다. 도쿄지점 비자금 사건에선 야쿠자 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이 입금되고 차명으로 대출이 나가도 제동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수년간 지속된 이번 횡령 사건도 은행 측에선 “담당자가 맘먹고 한 일이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고 해명한다. 사고를 막기 위한 견제나 확인이 평소 그만큼 소홀하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서 꼽는 또 다른 이유는 불안정한 지배구조다. 뚜렷한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관치 논란과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고, 경영진끼리 알력을 빚는 경우까지 나타나면서 은행원들의 사기와 도덕성이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대형 금융사고 대부분은 국민·우리·농협은행에서 발생했다”며 “경영진 교체나 매각 등 정치나 정책 변수에 많이 휘둘려 조직의 사기가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은행만 해도 올해 초 미국의 주총분석회사인 ISS가 사외이사 선임 반대 의견을 내면서 ‘ISS 보고서 사태’를 겪었다. 당시 어윤대 KB금융지주 전 회장의 측근인 박동창 부사장이 내부 자료를 ISS에 전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어 전 회장을 반대하는 사외이사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안 그래도 느슨한 조직문화와 합쳐져 악영향을 키운다. 외환위기 이후 합병으로 탄생한 대부분의 은행에선 인사권을 놓고 내부 파벌싸움을 벌이거나 경영진이 노조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시중은행 고위 인사는 “2~3년에 한 번씩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조직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반복돼 왔다”며 “직원 중에는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실력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줄대기를 하거나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도 계속된 금융사고가 은행의 지배구조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임기영 외국어대 상경대학장은 “지배구조가 탄탄했다면 부실대출을 해 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일을 쉽게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떨어진 사기와 조직문화를 바로잡지 못하면 언제든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 경영진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리딩뱅크가 될 수 있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일련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지배구조와 조직문화가 단단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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