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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학자로 머물기엔 너무도 능력이 풍부했던 인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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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병춘 1932년 서울에서 제3대 부통령 함태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를 졸업했다. 59~70년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주미대사, 외교담당 특보를 역임했다.

1983년 초 여름 함병춘(당시 51세·사진) 연세대 교수는 청와대로부터 호출을 받아 전두환 대통령을 만난다.

 “함 교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주시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처음 대면하는 전 대통령이 다짜고짜 말했다.

 “각하, 저는 외교가라서 정무적인 대통령 비서실장에 부적당합니다. 각하를 뵌 김에 몇 가지 시무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광주 문제는 불편해도 각하께서 직접 풀어주셔야 합니다. 둘째, 미국같이 개방된 나라에서도 로절린 카터 여사가 자꾸 앞에 나서는 데 매우 비판적입니다. 지금 이순자 여사가 너무 나서시는데 이는 자제해야 합니다.”

 함 교수는 귀가 뒤 그토록 강한 비판을 했으니 이젠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학봉씨가 여러 번 찾아와 ‘나라가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학자이자 외교가였던 함병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게 된 일화다. 함 선생은 그해 10월 9일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순직한다.

 지난 22일 오후 연세대 광복관 별관. 함병춘 선생을 기리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인과 가족, 후학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이홍구 전 총리,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정몽준·박상은 의원, 함재봉(장남) 아산정책연구원장, 함재학(차남) 연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국가관이 남달랐던 선생은 학자 출신 공직자의 훌륭한 전범(典範)으로 평가된다. 최종고 서울대 법대 교수는 ‘평범한 학자로서 머물기에는 너무도 능력이 풍부했으며 스케일이 넓었던 인물’이라고 기렸다.

 1964년 함 선생은 한국인의 법 태도를 조사했는데 이는 한국 법사회학 연구의 시발점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1959년)를 땄지만 한국의 전통과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깊이 있게 성찰했다. 국제감각과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과 지미 카터 정부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것도 공적으로 기억된다.

 함병춘 선생은 생전에 늘 말했다고 한다. “모든 공직자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이 있어야 한다. 언제라도 그 영역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어야 소신껏 일할 수 있고 최고 권력자에게 쓴소리도 할 수 있다. 그게 선비정신을 갖춘 공직자다.”

김종록 객원기자, 문화융성위원 kimkisa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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