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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예브게니 오네긴』 언급은 北에 주는 경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3일 오후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러 대화(KRD) 포럼 폐회식에 함께 참석했다. 민·관·산·학 협의체인 ‘한·러 대화’는 이날 경제와 통상, 정치와 국제관계, 문화와 예술, 교육과 과학, 언론과 사회, 차세대 분과에서 논의한 내용을 양국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청와대가 내놓은 ‘2013 한·러 공동성명 최종합의문’에서 ‘한·러 대화’를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은 35개항 중 세 번째로 적시됐다. 한·러 대화의 실무를 진행한 허승철(54·전 우크라이나 대사·사진) 고려대 노문과 교수는 “공식채널로 거론하기 힘든 문제는 한·러 대화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앞으로 양국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러 대화는 2010년 시작됐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열린 ‘러시아·독일 대화’를 참관한 고려대 이기수 총장의 제의로 탄생했다. 러시아에서는 ‘러·독 대화’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대가, 한국에서는 고려대가 주관을 맡았다. 러시아가 이 같은 ‘대화’ 상대국으로 삼는 나라는 독일과 한국밖에 없다. “독일은 러시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라는 경제적 의미가, 한국은 동아시아 중심국이라는 정치외교적 이유가 있다”고 허 교수는 설명했다. 매회 개막식 혹은 폐막식에 양국 정상이 참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성사된 한·러 무비자 협정은 한·러 대화가 일찌감치 내세웠던 의제였습니다. 또 2011년 나온 양국 대학총장 포럼을 출범시키자는 제안은 올해 결실을 봤죠. 양국의 명문 대학 총장 30여 명이 한자리에 앉아 교육의 미래와 젊은이 창업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행사가 열리지 못했고 양국 모두 새 리더를 맞은 상황에서 다시 세 번째 행사가 이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한·러 대화의 가장 큰 존립 이유로 ‘네트워킹’을 꼽는다. 인맥이 중요한 러시아의 특성상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인간적 유대관계를 단단히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는 ‘차세대 포럼’은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있다. “5회 정도 진행되면 보다 구체적인 결실이 나올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문화예술 교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번 방한에서 러시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은 한·러 대화가 마련한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 동상 제막식이었다고 전했다.

허 교수는 특히 이날 한·러 대화 폐막식에서 푸틴 대통령이 동상 제막식과 관련해 푸시킨의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을 즉석에서 언급한 것을 “북한에 주는 경고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던 인간이죠.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능멸하지만 결국 그 여인에게 사랑을 구걸하게 되는 가련한 인간. 굳이 이 소설을 언급하면서 ‘믿음과 존경을 통해 북한 핵 이슈를 풀어나가자’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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