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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시아로 다시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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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0일 조지타운대에서 미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외교정책 전반을 주제로 연설했다. 이 연설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미국 정부 셧다운 사태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한 이후 그간 추구해온 아시아의 재균형정책, 또는 아시아 중시정책에 대한 그의 공약이 지켜질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스는 이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4월 아시아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 지역 관련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고립 상태를 해소하려는 최초의 주요한 시도였다. 또 다른 이유는 제2기 오바마 행정부에선 아시아 정책을 위한 강력한 대변인이 별도로 없었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지난 9월 외교정책을 주제로 삼았던 유엔 연설은 전적으로 중동에 초점을 맞췄다.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짐 스타인버그 부장관처럼 아시아와 관련한 탄탄한 배경이나 어젠다가 있는 인물이 오바마가 새로 임명한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 각료급 지명자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 아시아 정책의 문제점 중 하나는 특정 인물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베이징에 도발적일 수 있는 이슈를 매년 또는 격년에 걸쳐 반복해 강조해왔다는 점도 적어도 이 지역 인사들에게는 문제로 보일 수 있다. 라이스는 오바마 행정부가 원칙과 전략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이러한 인상을 바로잡았으며 아시아 지역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관련해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함으로써 할 일을 제대로 했다.

 라이스가 제시한 비전에는 몇 가지 주목할 점이 보인다. 첫째, 한국인들은 이 연설이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모든 행정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던 주제이지만 현재 행정부는 북한 문제 및 중국의 불확실한 미래 역할과 관련해 미국과 동맹국이 함께 반드시 처하게 될 도전에 대해 충분히 강조할 수 없었다.

 미국과 중국의 미래 관계에 관한 설명 역시 미묘하면서 포괄적이다. 라이스는 미국이 중국과 “주요 강대국 관계의 새로운 모델 설정”을 추구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제시한 원칙을 수용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의 대만 상대 무기판매, 지역 해양영토분쟁, 미국의 군사작전 등에 대한 중국의 관심에 미국이 순응하는 방식의 ‘강대국 간의 새로운 관계 모델’을 베이징이 선호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관측통들은 아마도 지나치게 간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라이스가 제시한 북한에 대한 대응책도 적극적이다. 라이스는 “우리의 가장 긴급한 안보목표 중 하나는 북한의 핵과 기타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의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다”고 말하며 전반적인 접근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했다. 협상은 그런 다음에나 가능한 것으로 제시됐으며 “진정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경우에만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위협 감소에 대한 강조는 북한이 선택할 양자택일의 선택지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원칙 강조보다 훨씬 실용적인 접근법이다. 양자택일에서 하나는 완전한 비핵화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추가 고립이었다. 대화는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도 있지만 그동안 모든 방안을 총동원해 북한 프로그램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라이스는 이러한 핵심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는 “피할 수 없는 경쟁의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의 사이버 스파이 행위를 주목하고 중국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또 중국이 법과 인권, 종교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원칙을 존중하도록 함께 일하는 것을 강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마지막으로, 경제 분야와 관련해 라이스는 “이 지역에서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목표는 TPP를 체결하고 의회의 승인을 얻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무역협상촉진권한(TPA·미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대외무역 관련 협상권을 위임받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는 권한) 입법을 끝내고 내년 4월 아시아를 찾아야 오바마의 순방이 성공적이 될 것이다.

 라이스는 오바마가 내년 4월 어느 나라를 찾을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지난 10월 가지 못했던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 이어 일본을 국빈 방문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는 마지막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하기 좋은 일정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