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파격인사냐 검찰 길들이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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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인사를 둘러싼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고검장 승진 대상자 4명의 명단이 알려지자 검찰은 서열파괴 인사라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검사들의 움직임을 집단항명으로 간주해 징계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검찰 간부의 서열파괴 인사는 이미 강금실 장관 임명 때 예견됐던 일이다. 그동안의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생각한다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첫 검찰인사는 새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거리였다.

康장관의 고검장 승진인사 내용은 파격을 넘어 서열파괴라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인사권자의 검찰 조직에 대한 시각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존 인사 틀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선배들을 훌쩍 제치고 정상명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법무부차관에 내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에서 발탁은 충격 그 자체다.

특히 그동안 권력에 아부하는 검찰에 신물을 느끼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만 보고도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검찰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발탁인사는 그동안 정치권력의 검찰 길들이기, 자기사람 줄세우기 수단으로 악용된 게 현실이다. 이번 발탁인사가 평가받으려면 발탁된 인사들이 객관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인물들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정치검찰을 만들기 위한 길들이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이같은 서열파괴가 단순한 연령의 세대교체가 아니라 이 정부가 내세우는 개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설명돼야 한다.

康장관이 검찰총장보다 오히려 외부의 특정단체와 협의했다는 검사들의 주장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검찰 인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더욱이 기존의 검찰 수뇌부가 자리에 연연하며 하급자를 몰아내는 모습은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상급자일수록 책임을 통감하고 희생할 각오를 먼저 보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