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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통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금 만원.
내겐 결코 수월한 돈이 아니다. 비록 손 때가 새까맣게 묻어있지만 빈틈없이 도장이 꽉꽉 찍혀있는 이만원짜리 적금통장이 오히려 거액이라면 거액 일수도 있는 돈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땐 고향의 부모님 생각으로 하루같이 찔끔거리던 나였다. 부모님의 피땀으로 공부하면서도 아까운 것도 고마운 것도 모르던 내가 1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장학생이 되었고 틈틈이 학교 편집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적금을 든 것이다.
계집애가 대학엘 다닌다는 것은 당치도 않으며 더구나 다 큰 계집애를 어떻게 혼자 놔두느냐고 펄쩍뛰시는 아버님을 기어이 설득하시어 나를 입학시키고 돌아가시던 어머님의 얼굴에 그 많던 주름살-.
내가 이 적금통장을 두 손에 쥐어 드리며 『엄마 고마워요. 작은 성의지만 제가 푼푼이 모은 거예요. 이번 아버지 환갑 때 두 분이 여행이라도 다녀오세요.』한다면 어머님은 웃으실까? 아니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실까?
나의 진학이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근거리시던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큰 소리로 딸 자랑을 하실는지도 모르겠다.
보다 착한 딸이, 그리고 보다 자랑스런 딸이 되어서 부모님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고향 행 열차에 앉아있는 내 마음은 나르는 새에 비길 바가 아니다. 김소연<경기도 평택읍 평택1리 13·이민섭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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