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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도발 3년, 연평도 다시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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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 3주기를 이틀 앞둔 21일 연평도 안보교육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포격 당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연평도=김상선 기자]

21일 오전 연평도 선착장. 길게 뻗은 부두 위 산꼭대기 초소에서 군인 두 명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부두 한쪽에선 주민 20여 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잡아온 꽃게를 그물에서 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민 손모(34·여)씨는 “지금은 잠잠하지만 언제 또 그런 일이 날지…. 아직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이주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도 아닌데 삶의 터전을 떠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무너진 건물은 복구했지만 악몽은 여전

 북한 땅에서 불과 11㎞ 떨어진 섬 연평도는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4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북한 개머리 기지로부터 폭격을 당했다.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당시 포격당한 건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재 대부분 복구됐다. 하지만 포격 발생 3년이 지났음에도 주민들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 듯했다.

 연평도에는 생계를 잇기 위한 일과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공존한다. 지난 3월 기자가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는 위협이 생계를 압도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남북 불가침을 폐기하고 비핵화 관련 공동 선언을 완전 백지화한다”고 밝히며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대기시켰다. 위기감이 다시 한 번 이 작은 섬을 휘감았다. 연평도는 가장 먼 지점과 지점이 3.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21일 연평도 주민들은 겉으로는 담담히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3년 전 북한의 포격에 이은 긴장 국면 속에서 주민이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은 듯했다. 기자가 이날 말을 건넨 10여 명의 주민은 ‘북한’과 ‘포격’이라는 말을 금기시했다. 입에 올리길 꺼렸다. 최남식(83)씨는 “항상 체한 것 같은 불안감을 안고 산다”며 “평생 이고 살아야 할 짐 같다”고 말했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지박령(地縛靈·특정 지역에 묶여 있는 귀신)’처럼 연평도 주민에게 들러붙어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 북한은 군기지와 숲뿐인 섬의 북사면이 아닌 민가가 밀집한 남사면을 조준 타격했다. 170여 발의 포탄이 쏟아졌고 40여 채의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김명애(47·여)씨는 “총알받이가 된다는 생각에 군부대 사격 훈련에도 여전히 마음이 덜컹거린다”며 “사격한다고 방송만 해도 약을 먹고 불안에 떠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도 연평부대에 헬기가 뜨자 몇몇 마을 주민이 문을 열고 놀란 눈으로 밖을 쳐다봤다.

 연평도 중심가는 새로 지은 건물과 낡아가는 건물들이 섞여 기이한 풍경을 자아냈다. 포탄의 흔적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해변도로 아스팔트엔 냄비 뚜껑만 한 크기의 포탄 파편 자국들이 흩어져 있었다. 연평도 중부리 가운데 세워진 안보교육장도 비슷했다. 세 채의 집은 열기에 우그러진 플라스틱 바구니, 숯덩이가 돼버린 목재골조 등 폭격 당시 그대로였다.

“당시 떠올라 추모행사도 작게 했으면”

 포격 이후 옹진군청은 매년 11월 23일 추모 행사를 연다. 그러나 주민들은 추모 행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김모(66)씨는 “행사가 주민을 다독이는 게 아니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인구(54) 어촌계장은 “내년부터는 옹진군청 주관하에 정부 인사나 외지인이 참석하는 추모 행사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조용히 마쳤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포격만큼이나 주민들을 힘들게 한 건 갈라진 마을 민심이었다. 폭격 이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으나 사용 방식을 놓고 주민들끼리 불화가 생기기도 했다. 정부의 가옥 보수비 지원 과정에서도 질시와 의혹의 눈초리가 서로를 향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고 있다. 김장 품앗이를 하려고 한 집에 이웃 아낙들이 모이는 일도 잦아졌다.

 한편 군부대도 연평도 포격 3주기를 맞아 경계태세를 강화한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훈련을 22일 실시한다고 21일 밝혔다. 3년 전 포격 상황처럼 북한군이 개머리 기지에서 연평도로 방사포를 쏘는 것을 가정한 훈련이다.

연평도=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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