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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대주주 부당지원 땐 '무관용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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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나 대주주·계열사 부당지원 등 다수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이 적용된다. 부채비율이 높고 채권을 많이 발행한 기업들은 분기마다 관련 정보를 모두 공시해야 한다. 금융 계열사를 통한 기업어음(CP)·회사채 판매나 대출 등 우회지원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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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1일 이런 내용의 ‘동양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 부위원장은 “동양사태에서 나타난 문제점의 치유뿐 아니라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재발하는 걸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감독·시장규율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내년 1분기부터는 불완전판매와 대주주·계열사 부당 지원, 대출금리·수수료 부당수취 등 ‘10대 위반행위’가 적발되면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징계를 받는다. 여기엔 피해 규모가 큰 경우 해당 회사의 영업정지와 관련 임원의 해임 및 금융회사 재취업 금지 등이 포함된다. 10대 위반 행위는 불완전판매, 대주주 및 계열사 부당지원, 대출금리 및 수수료 부당수취, 꺾기, 불법채권 추심행위, 보험사기·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불법사금융, 유가증권 불공정거래, 불법 외환거래 등이다.

 금융회사를 통해 비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거나 투자하는 행위도 엄격히 제한된다. 지금은 금융회사가 특정금전신탁과 펀드에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을 절반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투자 목적인 경우만 빼고 모든 우회지배를 포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면 동양그룹처럼 금융 계열사 자회사를 통해 다른 회사를 간접 지배하기가 어려워진다. 동양증권은 동양파이낸셜대부 지분을 100% 갖고 있고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 지분 26.21%를 보유하고 있다. 동양증권이 사실상 ㈜동양의 대주주인 셈이지만 대부업체는 우회지배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지분을 취득할 때 금융위 승인을 받지 않았다.

 또 대기업 계열 대부업체는 자기자본의 100%까지만 대주주 및 계열사와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회사가 최대주주인 대부업체는 대주주나 계열사에 신용공여를 못하게 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대부업체에 대한 감독·제재권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금융위원회로 넘겨받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시장을 통한 감시도 크게 강화한다. 내년 상반기부터는 금융권 빚과 시장성 차입금의 합계액이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의 0.075% 이상인 경우 금융권에서 빌린 돈과 CP·회사채 발행실적, 미상환 잔액 등을 분·반기 보고서나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또 계열사 등 외부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개별 회사의 사업·재무능력만 반영하는 독자신용등급제를 2015년 도입한다.

 동양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특정금전신탁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금융위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특정금전신탁 최소 가입금액을 5000만원으로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또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특정금전신탁 가입을 권유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는 연말부터 금지하고 특정금전신탁 계약 시 다른 상품처럼 상품설명서를 의무적으로 교부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번 대책에 대해 시장에선 ‘제대로 일을 않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양사태만 해도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CP와 회사채를 마구 발행해도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시장을 감시하고 감독할 의지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최근 동부그룹이 3조원 규모의 자구책을 마련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동부그룹의 자구책 마련엔 최근 500억원대의 회사채 차환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게 큰 역할을 했다. 당국이 동부그룹의 채권 현황 파악에 나서자 회사채를 인수하려던 증권사들이 일제히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양산한 대주주의 불법 행위를 법원이 이미 강력히 처벌하고 있는 마당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방안도 뒷북으로 지적된다. 시장 관계자는 “당국이 제때 위험을 경고하기만 해도 문제의 상당 부분을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이 규제개혁위원회와 국회 등 남은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저축은행 사태 때 당국이 내놓았던 ‘제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기업들의 반발로 법제화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금융사 특정금융신탁과 펀드에 계열사 채권이나 회사채를 50% 이상 편입할 수 없게 하는 방안도 규개위 심사에서 수개월 연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대부업법이나 기업구조조정촉진법만 해도 국회 상임위별 이해관계가 달라 수년째 논란만 지속되고 있다”며 “범정부적인 의지가 있어야 대책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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