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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 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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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라톤」 경기는 근대 「올림픽」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1896년 「아테네」의 제1회 「올림픽」때 이미 그 종목이 채택되었다.
고대「그리스」사를 보면 「페르샤」와 「그리스」가 일대 격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페르샤」의 대군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향해 압박해오자 「그리스」는 그 흥망의 결전을 각오해야 했다. 이때에 공방전을 벌인 곳이 「아테네」의 교외 「마라톤」이다.
「아테네」군은 필사의 항전으로 드디어 대승을 거둔다.
이 승리의 기쁨을 「아테네」시민에게 어서 알러주어야 했다.
그 선주자로 나선 사람은 고대 「올림픽」의 경주선수. 그는 「마라톤」으로부터 「아테네」까지 뛰기 시작했다. 그가 「아테네」시에 이르러 『우리는 이겼다』고 외쳤다. 그리고는 쓰러져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BC490년의 고사이다.
「파리」「소르본」대학의 「미셸·브레알」(M-Breal) 교수는 이 고전장의 고사를 인용,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했었다. 근대 「올림픽」의 부흥자인 「쿠베르텡」은 이 주장을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나라는 「베를린·올림픽」때(1936년) 손기정 선수에 의해 월계관을 쓴 일이 있었다. 기록은 2시간29분19초2. 망국의 우수 속에서 손 선수의 가슴엔 비록 일장기의 「마크」가 붙어 있었지만, 그가 준 감동은 승리 이상의 것이었다. 「마라톤」이라면 우리에게 의지와 힘을 주는, 마치 민족경기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도 그런 곡절 때문이다. 그후 「보스턴」의 「마라톤」경주에서도 우리는 세계 제일의 기록을 쌓은바 있었다.
손기정 선수가 월계관을 쓰기까지엔 고심참담한 일화들이 숨어있다. 그는 언젠가 『나는 가난해서 뛰었다』고 고백한 일도 있었다. 말할 수없이 불우한 가운데 돈 안들고 오로지 정신력으로 해낼 수 있는 경주는 이것뿐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무명바지 가랑이에 모래를 잔뜩 넣고 압록강모래밭을 몇 달이고 뛴 일도 있었다. 다리가 모래에 쓸려 그 상처 때문에 고생을 한일도 몇 번인지 모른다고 한다. 「마라톤」은 백리를 단숨에(?) 뛰는 경기인 만큼 체력이 강해야 한다. 심장과 폐장이 약해가지고는 견디어 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경기는 혼자서 장시간·장거리를 뛰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와 정신력이 「평범」을 넘어야 한다.
「마라톤」은 그야말로 인간다운 경기이다. 「트릭」도, 잔꾀도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하루아침에 선수도 될 수 없다. 어느 경기보다도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오늘 시작되는 중앙역전경기대회는 그 요람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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