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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골목] 살롱화 80%는 '메이드 인 성수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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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성수동 제화거리에 있는 한 공장에서 ‘구두장인’이 살롱화를 만들고 있다. 성수수제화협회는 최근 ‘SSST’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성룡 기자]

‘회사원 장영혜(36·서울 신촌동)씨는 지난해 12월 명동 ‘살롱’ 구두 집에서 부츠를 맞췄다. 발이 편한 부츠를 원했으나 찾을 때 보니 종업원들이 유행이라고 강권하던 볼이 좁은 것이었다’. <본지 1978년 4월 5일자 5면·박금옥 기자>

70년대 살롱화는 구두의 대세였다. 명동에 밀집한 살롱화 매장은 유행을 선도했다. 고급 사교 모임을 뜻하는 ‘살롱(salon)’에 구두가 더해진 합성어가 바로 살롱화다. 당시 살롱화 매장 종업원은 손님의 발 치수를 일일이 재서 공장에 주문을 넣었다. 일종의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이다.

80년대부터 모여든 공장 600곳

 “당시 구두는 제품이 아니라 예술이었어요. 요즘은 돈 벌려고 만들지만 그때는 명동 양품점에서 하루 2~3개 정도만 주문을 받아서 만들었죠.” 성동구 성수동 제화거리에서 만난 SCOALL 제화 양영수(50) 대표의 말이다.

명동과 청량리에 흩어져 있던 제화 공장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든 건 80년 무렵. 신발 밑창을 붙이는 본드 냄새 때문에 주택가 주민들의 민원이 늘어나자 많은 제화공장들이 자동차 정비소가 몰려 있던 성수동으로 이전했다. 지난 8일 찾아간 성수동 제화거리. 공장 간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건물 2·3층에 있는 제화 공장에선 장인 3~5명이 모여 구두를 만들고 있었다.

겉가죽인 갑피(甲皮) 작업을 지켜보던 김승만(60)씨는 “70년대 구두 기술자들은 웬만한 직장인 월급의 2배 이상은 받았다”며 “제화기술은 원한다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제화거리는 중국산 저가 신발이 늘면서 위기를 겪었다. 1000개에 이르던 제화 공장이 600여 개로 줄기도 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수제화의 80%가 이곳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요즘 제화거리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변화는 성수역 입구에서부터 감지된다. 성수역 근처에는 수제화 매장 5곳이 영업 중이다. 2011년 문을 연 성수수제화공동매장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남성화는 15만~20만원 수준. 유통마진을 없애 국내 유명 브랜드와 동일한 품질의 구두를 절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인기다. 매장에서 만난 안정수(42)씨는 “백화점에서 샀던 것과 다를 게 없는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저가 중국산 신발에 밀려 위축

 제화거리 곳곳에선 신발 쇼핑에 나선 20~30대들의 모습도 보인다. ‘명장’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수제화 학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성동구청 이문호 기업활성화팀장은 “5개월 과정에 20여 명을 모집하지만 지원자가 많게는 70여 명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 회계사무소를 그만두고 신발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수동에 왔다는 이지선(30·여)씨는 “신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그게 구두의 매력”이라고 했다.

구두학교, 자체 브랜드로 재기 꿈

박동희 성동수제화협회장은 “몇 년 전만 해도 50대가 막내 취급을 받았다”며 “젊은 친구들이 수제화를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걸 보면 성수동도 피렌체 못지않은 명품 제화 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 28일에는 8개 업체가 참여하는 브랜드숍이 성수역 옆에 문을 연다. 손님들의 발 모양에 맞춰 주문 생산하는 살롱화도 선보일 예정이다. 성동구청은 제화거리에 만든 진품 구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내놓을 예정이다. 성수동 제화거리가 인기를 끌면서 성수동 이름을 단 짝퉁 구두까지 나와서다.

글=강기헌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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