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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흐름과 소프트한 음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프랑스의 여류 팜부크장은 양친이 알메니마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음악의 체질은 프랑스인다운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어 처음부터 산뜻한 인상을 주었다.
많은 경우 서구전통이라고 하면 엄격한 형식감과 구성적인 독일계의 연주스타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또한 영향력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팜부크장은 이러한 세계와는 또 다른 하나의 양지의 영역이라고 할만큼 톤의 질감이나 연주의 방향이 다르다. 마치 하나의 조각품을 다루듯이 정성들여 깎고 다듬어 선의 유동감과 색채의 다양한 조화를 추구해간다. 때문에 내용감정의 주관성보다는 순수한 음향의 공간조형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미루어 간다.
따라서 농도 짙은 정감이나 중후한 내공성은 찾기 힘들고 가슴팍을 파고드는 서정미 따위는 그에게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젊은 생동감과 섬세한 음감, 그리고 차밍한 조형미는 그의 상징적인 연주스타일과 더불어 큰 매력이고 그만이 갖는 세계라고 해야할 것이다. 특히 그의 특질을 잘 살릴 수 있는 드뷔시, 바르톡, 메시앙 등의 근대·현대작곡가의 작품을 택한 것도 분에 맞는 프로그래밍이라 할 수 있고 대신 구성적인 작품, 이를테면 베토벤이나 브람스 혹은 슈만 등의 작품이 제외되어 있는 것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역감이 약간 모자라지만 바르톡의 『루마니아 민속무곡』은 생생한 리듬감과 발랄한 표정으로 소박한 곡상을 잘 살려주었고 드뷔시의 『판화』는 대단한 열연으로 섬세한 흐름과 소프트한 음질로 미끈한 유동성을 살려 호연을 보여주었다. 메시앙의 『아기예수에 쓰는 20개의 시선』은 예리하고 정력적인 타건으로 프랑스 적인 세련미와 화려한 프레싱으로 이 어려운 현대작품을 능숙하게 다루어 다채로운 표상을 해주어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하이든의 『소나타 제50번 C장조』는 단아한 격조와 유화한 흐름이 아쉬웠지만 모차르트의 『소나타 제3번 B플렛 장조』는 천진한 그의 체질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담한, 그리고 밝은 연주였다. 김형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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