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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표준사업별로 그 현장을 가다|공동 우물<전북 익산군 팔봉면 이제 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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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우물덕택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 걱정이 없습니다』 전북 익산군 팔봉면 이제마을 사람들은 공동우물「뱃못샘」을 자랑했다.
이제마을은 이리에서 6㎞쯤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 마을 앞 한중간지점에 10각형 양철 지붕 밑 15평 남짓한 샘에는 맑은 물이 찰랑거렸다. 두드러진 이 마을의 새마을사업은 공동우물관리. 다른 마을은 지금 공동우물 파기가 한창이나 이 마을 60가구 주민 7백78명은 사실상 10년 전부터 위생적인 샘물을 관리해왔고 지금 남아있는 5개 우물의 위생처리를 서두르고있다.
일찍 공동우물을 착안한 사람은 부녀 생활 개선회 회장 송종섭씨(38·여). 송씨는 19세때 군산에서 이 마을로 시집왔다. 만경강유역의 평야지대인 이곳은 항상 식수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장마철이면 우물물은 논물이 섞여 나와 비위생적이었고 물을 떠다 놓으면 금새 노르스름하게 변했다.
송씨의 이웃인 이인순씨(37·여)집 우물도 마찬가지였다. 크지도 않은 마을에 위생적인 공동우물 1개만 있으면 다같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송씨는 시댁어른들께 건의했다.
동네 여인들도 공동 우물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었다.
드디어 62년 봄 공동우물을 만들게 됐다.
노인들은 어느 집에서나 우물까지의 거리가 비슷하고 수질이 좋으며 물량이 많은 마을 앞 논둑 밑을 우물의 적지로 택해주었다. 이장 김재영씨(50)는 당시 50가구에서 1가구 당 4백원씩, 2만원을 공사비용으로 거뒀다.
청년들은 땅을 파고 돌을 쌓았다. 나쁜 물이 곁에서 스며들지 않게 「시멘트」20여 부대를 우물안벽에 발랐다. 모든 공사가 보름만에 끝났다.
10각형으로「시멘트」벽 우물 테를 두르고 수면넓이만도 3.5평이나 되는 큰 우물이 생겼다.
이름을 「뱃못샘」이라 붙였다.
3백50년전 이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 우물을 파다 싱싱한 배 1개가 나와 길조라고 여겨 마을이름을 이제리라고 지은 것을 본떠 한글 식으로 붙인 이름이다.
물맛도 좋고 아무리 가물어도 아직 물이 달려본 적이 없다는 이 샘은 딴 우물과 달라 바가지로 물을 풀 수 있을 만큼 땅위에서 얕고 수심이 2.7m로 깊은 것이 특색이다.
우물둘레에 평평하게 「시멘트」를 깔고 두께15㎝의 사각기둥 5개 위에 5각형 8평 함석 지붕까지 올렸다. 주위에 10년 생 측백나무를 바람막이로 둘러 심고 빨래터도 새로 만들었다. 군 보건소도 부녀자들의 생활개선 운동에 따라 1개월에 한번씩 샘물에 소독약을 넣어 주었다.
올 들어 새마을운동사업의 하나로 이 마을이 추진할 사업목표는 나머지 마을 안에 있는 우물을 모두 위생처리로 개선하는 것.
이밖에 마을 안 길 1천2백62m의 확장공사를 마쳤고 마을자체자금 8만1천5백원과 보조금 8만원 등 16만1천5백원을 들여 30평짜리 공동작업장을 이미 세웠다.
5평짜리 공동목욕탕도 세워 가구마다 연료를 부담하여 하루 1가구씩 2개월마다 1번씩 돌아가며 이용하고 있다.
지붕개량도 28동이 이미 끝났고 올 여름 안에 36동을 「슬레이트」로 바꿀 계획.
이 마을은 10년 전만 해도 빈촌이었다. 50가구가 논과 밭을 합쳐 경지면적 겨우 15㏊에 매달려 살아왔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8년 전 양태희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개인소유 야산 1만5천평을 가난한 33가구에 무상으로 나눠준 것을 개간한 것이 힘이 됐다.
개간한 땅에 호밀·고구마 등을 심고 뽕나무도 가꿨다.
7∼8년 노력 끝에 저축한 결과 농토를 사들여 이봉덕씨(44)는 비농가였으나 논 4천3백평을 짓는 중농으로 일어섰다.
이 마을은 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66년 서울농대 이용빈 교수의 지도를 받아 「메탄·개스」를 개발한 것이 시범농촌으로 지정돼 대통령표창과 부상 1백만 원을 받기도 했다.
마을은 청·장정들로 구성된 신풍회(회장 김진근·37), 부녀생활개선구락부, 어른들의 모임인 지역사회 개발회(김인기·55)등 3개 조직이 새마을사업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고 있었다. <익산=김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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