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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을 「유니크」하게 윤색-『질마재…』|고독과 희망을 함께 담아-『흰 눈물』|평범한 일상을 서정으로 색칠-『끝나는 계절』|해학적으로 현실을 냉소-『아들의 표정』|윤병로 <문학 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우리 시단은 모든 불황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신기하게도 풍성한 호경기를 맞은 듯 시는 곳곳에서 마구 쏟아지고 있다. 고작 한 두개의 순 문예지에다 5, 6백의 과잉 시인들이 매달려 간신히 생명을 이어왔던 지난날과는 너무도 사정이 달라졌다.
「현대 시학」 「시문학」과 같은 시 전문지 외에도 종합지 그리고 일간지까지도 발표 지면은 엄청나게 개방되었다. 이제 얼마큼 「네임·밸류」만 있으면 의젓하게 청탁서를 받고도 미처 써내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올법하다. 투고한 시가 잡지사의 「캐비닛」 속에서 해를 넘기고 외교를 해야 겨우 햇볕을 보던 때와는 격세지감이다.
과연 이달에도 근 80여명의 시인들이 1백여 편의 시를 각종 지에 발표했다. 일간지와 동인지들까지 가산한다면 상당한 양산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우선 축복 받은 시단이라고 할까.
참으로 알뜰한 시편들이지만 차근히 읽고 씹어 보면 그저 그렇다는 공허감이 보다 솔직이 말해서 현기증마저 느낀다는 것이다. <시인은 많아도 시는 없다>는 부조리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통용된다는 얘기다.
그저 흥미로운 것은 70년대에서부터 내년대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각양 각색의 시작들이 신통하게도 변색하지 않은 채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여유 자적한 자연 찬가에다가 독수 공방의 야릇한 비가, 그리고 「모더니즘」의 변성 음과 시류적인 불협화음까지 골고루 들려주지 않던가. 그러면서도 다행한 것은 그토록 높이 쌓였던 난해의 벽은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 달의 시단에는 많은 원로들이 골똘히 자기 영토를 넓혀갔다. 서정주 박목월 박남수 양명문 박태진 등 중진들이 자기의 고유한 「에센스」를 풍기면서 진지한 시작을 펴간 것이다.
서정주의 『속·질마재 신화』 (현대 문학)는 근의 신라 정신으로의 복귀에서 출발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경지를 시도한 것이라고나 할까. 이 제하에 수록된 『신부』와 『소자 이생원네 마누라 님의 오줌 기운』은 재미있고 구수한 전설로 펴고 있다.

<소자 이 생원네 무밭은요.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 그건 소자 선생네 집 식구 가운데서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우리의 토속적인 민담을 아주 「유니크」한 언어로 윤색하고 있는 미당의 시 세계는 또다시 개척되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대담한 시어의 향토성과 구상화는 주목할만한 일이다.
박태진의 『흰 눈물』 (월간 중앙)은 결코 높지 않은 「옥타브」로 가슴에 호소해 오는 발상법을 보여준다. <흰 눈물을 흘러 나의 발자국을 지울까 허전한 것의 즐거움 아니면 그만큼 하얀 내일을 기다려 설까.>
고독과 희망을 함께 담아본 『흰 눈물』은 그대로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솟구치는 낭만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하얀 내일을 기다려본다는 것이다.
중견들의 시 세계는 백화점의 진열품처럼 「버라이어티」있게 전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 주목을 끈 시인은 신동집·한성기·박성룡·정공채 등이다.
신동집의 『끝나는 계절』 (현대 문학)은 평범한 일상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색칠하고 있다. <부엌에 끓는 찌개 소리가 노을에 한창 풀어 섞이고 있다.> 재치 있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능란한 솜씨를 보여준다. 무슨 맺힌 사연은 없지만 순순히 읽혀서 「리얼리티」를 돋우어 준다.
여기에 비해서 박성룡의 『아들의 표정』 (신동아)은 몹시 해학적인 수법으로 자유와 현실을 냉소하고 있다.,

<그는 한결같이 즐겁기만 하다.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 조를 수 있는 자유마저 누리고 있기 때문> 그는 언제나 비판적인 자세를 가다듬어 왔지만 이 시에서는 오늘의 우리의 현실적 상황을 피상적이나마 아프게 꼬집고 야유하고 있는 셈이다.
또 정공채의 『희망』외 2편 (현대 문학)도 현실적인 비감이 차근히 처리된 느낌이다. 씨의 팽팽한 저항이 차분히 가라앉고 고향을 부르는 서글픈 인정으로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조용한 저음으로 마지막 깃발을 흔드는 것인지 모른다.

<울며 가버린 아득한 삼림에 희디 흰빛이 자주 일면서 가만한 옛 고향의 소리도 살아나 온다>
이 시와 함께 내 놓은 『속된 거리』와 『섬』도 그러한 「톤」으로 현실을 점철해 갔다. 이제 그의 시 경향이 변모해 간다는 것이지만 분명한 발상이 기대된다.
한편 최근에 각광받는 신인들의 시 세계는 여러 모로 시도되고 있다. 과연 그것이 하나의 시 영토로 정착하기 위해선 많은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시단의 새 기류는 그들의 시에서 찾게 마련이다. 무엇인가 불안할이 만큼 자리잡히지 않은 선소리가 튀어나오지만 신선한 감각과 탄력 있는 저항을 느끼게까지 한다.
그 특징을 가장 짙게 풍기는 시인으로는 김영태 이유경 조태일 황명걸 같은 신인들이다. 그들의 시풍은 제각기 딴 모습이지만 발랄한 언어로 현실과 대좌하고 있는 것은 신인들의 바람직한 자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조태일의 『국토』 ⑨ (월간 중앙)는 숨가쁜 목소리로 애국을 울부짖고 있다. 그러나 끝장에는 원한으로 터뜨려지고 만다.

<색맹인가 근시안인가 산천 초목도 철천지원수로 보이고 모든 빛깔도 단일 색이다>
끈질긴 그의 저력은 시의 중량을 더해가고 있지만 생경한 시어가 좀 더 다듬어져야겠다는 과제는 쉽게 가셔지지 앉고 있다.
또 많은 신인들이 이 달에 특징 있는 얼굴과 시를 내놓았지만 미처 언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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