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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패션 메시지 광고 냄새 지우고 영상 예술 경지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9호 24면

Roman Polanski - A therapy

패션 브랜드가 세간의 눈을 사로잡는 방법이 뭘까. ‘이 옷 디자인이 참 예뻐요’ ‘저 가방 질이 좋아요’라고 직접 내세운다면 한참 뒤처진 것. 이제 브랜드들은 역사를 얘기하고 컨셉트와 패션 철학을 설파한다. 그래서 당신은 단순한 물건이 사는 것이 아니라고, 그 옷이나 가방을 걸침으로써 남들과 다른 고급스럽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하는 거라고 속삭인다.

엘르의 ‘뉴욕 패션 필름 페스티벌’, 21~24일 통의동 대림미술관

이 우회 광고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바로 패션 필름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으로 총체적 이미지를 앞세운다. 유명 감독이나 사진가에게 작업을 맡겨 광고 냄새를 지우고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몇 분짜리 짧은 영상 속엔 대문짝만한 로고가 등장할 수도, 아예 제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가장 그 브랜드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005년 너도나도 향수 패션 필름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 이제는 웬만한 브랜드에서 패션 필름 한 편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아예 패션 필름을 새로운 장르로 인정하고, 이들을 모은 영화제도 열린다. 뉴욕 패션 필름 페스티벌(New York Fashion Film Festival·이하 NYFFF)이 대표적이다. 이 행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필름 스쿨인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의 주관 아래 패션과 미디어가 결합한 패션 필름을 새롭게 조명해보자는 목적으로 탄생했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뉴욕에서 열렸는데, 한 해 동안 제작된 작품에 대해 혁신성과 창조성이라는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패션 잡지 엘르가 이 NYFFF를 국내에 선보인다. ‘ELLE introduces NEW YORK FASHION FILM FESTIVAL in Seoul’이 그것. 엘르코리아가 NYFFF의 한국 공식 호스트로 선정돼 마련한 행사로, 지난해 창립 20주년 기념 이벤트로 진행해 큰 호응을 얻자 다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이번 행사에서는 NYFFF 최종 상영 출품작 중 22편이 공개된다. 아시아 최초 전시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의 사진 작가 라이언 맥긴리, 패션과 영상의 거장 로만 폴란스키,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 ‘Applause’를 제작했던 패션 포토그래퍼 듀오 이네즈&비누드가 디렉팅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맥긴리의 ‘뷰티풀 레벨스(Beautiful Rebels)’는 자연과 자유로움을 조화시키는 영상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어린 모델의 손가락과 어깨, 얼굴 전체에 여섯 마리의 아프리카 나비를 등장시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델은 패션 브랜드 ‘Edun’의 2012년 S/S 의상을 입고 등장하며,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나비들과 함께 맥긴리 특유의 따스하고 유니크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감독이자 작가·배우로 활동하는 로만 폴란스키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프라다와 손잡고 ‘테라피(A Therapy)’를 제작했다. 한 여자 환자가 입고 온 프라다 코트에 테라피스트가 집착한다는 내용. 그 과정에서 익살스럽게 묘사되는 상황 연출이 포인트다.

감독은 “프라다라는 브랜드가 지닌 아이러니와 위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여자 환자로 영국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가 낙점되면서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네즈&비누드는 니나 리치의 2012년 F/W 컬렉션 의상들을 애니메이션과 영상을 조합시켰다. 브랜드의 정체성에 맞게 서정미를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뉴욕 타임스·아디다스 등에서 패션 이미지 메이커로 활동하는 제이콥 수톤의 작품도 놓칠 수 없다. 춤을 모티브로 삼은 그는 미국 댄서 릴 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지방시의 의상과 부츠 등을 걸치고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춤사위를 자랑한다. 릴 벅과 그의 안무단은 미국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팝의 여제 마돈나의 ‘수퍼보울 하프타임 쇼’의 메인 댄서로 참여한 화제의 그룹이다.

필름 대부분이 2분 내외로 22편을 모두 감상하는 데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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