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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공간 있으면 노인 자살 줄어들 것 … 일자리 있는 ‘그들의 종로’가 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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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실버 경제권에서도 요즘 가장 떠오르는 장소 두 곳이 허리우드 실버 영화관과 인근의 추억더하기 카페다. 실버 영화관은 2009년 낙원상가 4층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노인 전용 영화관. 55세 이상 관객은 2000원만 내면 추억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다. 추억더하기 카페는 DJ가 틀어주는 옛 음악을 LP판으로 감상하는 장소. 중학교 교복을 입은 백발 신사와 빨간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들이 서빙을 담당하는 ‘고령자 친화기업’이다. 4000원만 내면 옛날식 도시락을 먹고 차를 한잔 즐길 수 있다.

김은주 대표. [최정동 기자]

이 두 곳은 사장이 같다. 김은주(39ㆍ사진) 대표. 여기뿐 아니다. 올 초 경기도 안산시 중앙역에 문을 연 또 다른 노인 전용 극장 ‘명화극장’이나 지난달 문을 연 인천의 노인 극장 ‘미림극장’ 역시 김 사장을 통해 기획됐다. 20대 후반에 극장 사업에 발을 들여 10여 년 만에 노인 대상 사회적 기업가로 성장한 그는 “삶을 즐길 공간이 있다면 세계 최고의 노인 자살률도 확 떨어질 것”이라며 “종로가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놀거리를 제공하는 해방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실버 극장 사장이 30대 여성이라 놀랐다.
“28세에 극장 기획실에 취직했다가 충무로 스카라극장 운영을 맡았다. 오래된 극장이라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다 노인이었는데, 극장 문을 닫게 되니 이분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같이 할 일을 찾다 허리우드극장을 열게 됐다. 주변 대형 극장과 경쟁하려니 차별화가 필요해서 노인 전용관을 기획했다.”

-입소문이 꽤 난 것 같다.
“처음엔 하루 관객이 200여 명이었다. 극장 임대료에 직원 월급, 영화 저작권을 제대로 내지 못해 집 담보로 대출을 받고 차를 팔았다.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적자다. 물론 대출도 다 못 갚았다. 요즘은 하루 700~1300명 정도 방문한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모든 좌석이 매진된 적도 여러 번이다.”

-종로에 노인 상권이 커지고 있다.
“노인들은 ‘거기 가면 내 또래가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는다. 나만 해도 20대들의 장소에 가면 소외감을 느끼는데 노인들의 심정이야 어떻겠는가. 이들끼리 모여 추억을 나눌 장소가 필요하다.”

-극장과 카페를 합치면 고용한 노인들만 30명이 넘는다.
“사회적 기업이라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 창출이다.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 좀 하게 해달라는 분들이 너무 많다. 극장에만 자원봉사자가 10명이 넘는다. 자원봉사를 하던 한 할머니는 편찮은데도 ‘수술하고 오면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수술을 안 받겠다고 버틴 적도 있다. 그분께 ‘수술하고 와도 일하게 해드리겠다’는 각서를 써드리니 수술을 받았다.”

-안산과 인천에도 영화관을 냈는데.
“이런 곳이 없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지하철을 타고 온다. 전국 지자체와 손잡고 가급적 많은 곳에 노인 전용 극장을 열고 싶다.”

-다른 계획이 있다면.
“극장 한편에 반찬 가게를 열 생각이다. 할머니를 20분 정도 고용해서 저렴하게 맛있는 반찬을 파는 거다. 또 염색만 저렴하게 해 주는 미용실은 어떨까 싶다. 노인들께 도움이 되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사업이 무궁무진하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 실버 산업이 급성장할 것 같았는데 예상외로 속도가 더디다.
“지금은 너무 초기 단계라 돈이 안 된다. 손해를 봐가면서라도 노인들에게 인생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다 보면 10, 20년 뒤에 시장이 커질 거라 본다. 그때는 대기업들이 뛰어들어 나 같은 영세업자들이 밀려나겠지만. 나는 총알받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분들이 많아 행복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 중앙선데이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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