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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누가 금융을 욕하나, 그 '착한' 얼굴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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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금융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로버트 쉴러 교수는 “금융자본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금융의 잠재력을 보고 민주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새로운 금융시대
로버트 쉴러 지음
노지양 옮김, RHK
455쪽, 1만7000원

금융에도 선과 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금융이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은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이 퍼지기도 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점령운동(Occupy:사회의 불공정과 금융지배에 반대해 월스트리트를 비롯, 2011년부터 전세계 1800여 도시에서 진행된 시위)’이 확산됐다.

 이처럼 금융에 대한 깊은 불만과 적대적 환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는 『새로운 금융시대』(원제 Finance and the Good Society)에서 금융의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되새김하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금융인·일반인·정책당국자, 혹은 금융관련 법률가·회계사 등이 한번쯤 들었거나 고민했을 만한 이슈다.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금융이 원래 갖고 있던 사회경제적 기능을 재인식하고 위험감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쉴러 교수는 무엇보다 “금융자본주의는 인간의 발명품이고 아직 미완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금융을 경제 불평등의 엔진이라고 규정짓고 손을 놓기보다 금융이 지닌 잠재력에 초점을 맞추고 시스템을 더 민주적이고 더 인간적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금융시스템은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인적 기반을 확대하고, 전체 경제의 이익공유 기회를 확대하고, 불평등 혹은 불경기를 완화할 수 있는 새 기업모델과 대안적 금융기반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특히 세제정책이나 자산단체 운용방식, 주택정책, 기업에 대한 지원체계, 경쟁정책 등에 금융정책을 적극 활용해 변화를 이끌어 내자고 말한다.

 즉, 금융자본주의 민주화에 대한 비전을 갖고 금융 불평등 완화와 경제적 가치의 공생기반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금융의 미래라는 것이다. 불평등 수준과 연계해 소득세율을 높이는 방안이나 참여형(출자방식) 비영리법인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쉴러 교수는 CEO에서부터 회계사, 자선사업가들의 책임과 역할부터 돌아보자고 말한다. 그 중 하나가 CEO의 보상 문제다. 흔히 회사 임원들의 과도한 보수가 대중의 적대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데. 쉴러 교수는 CEO의 보상수준 자체보다 보상기준과 방식이 얼마나 타당한가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CEO는 회사에 있는 동안 회사의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하지만 짧은 재직 기간 때문에 도덕적 유혹을 받을 수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업 CEO들의 보상액은 상당 부분을 재임기간이 끝나고 5년 후에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파격적이다.

 트레이더의 역할도 중요하다. 쉴러 교수는 투자은행 업무가 도입되면서 기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대형 벤처기업이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탐욕적으로 보이는 트레이더도 새로운 정보를 신속히-쉴러는 이를 생물학적 본능으로 풀이한다-가격에 반영함으로써 시장의 미래 트렌드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보험은 살아가는 동안 직면하게 되는 위험을 분산해 삶의 수준을 높여주며, 정책당국에 의한 공정성 확보나 금융에 의한 공공재정 지원 등도 금융의 핵심요소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금융시스템이 본질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환경으로 되돌아가고, IT기술 변화나 독과점에 대한 비판 등 새로운 요구에 맞게 계속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금융자본주의가 기본원칙으로 회귀(back to basics)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신뢰를 잃은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인이나 금융상품, 금융서비스 자체의 문제일까. 아니면 금융 이외의 요인에 의해 제약되는 것일까.

 쉴러 교수는 금융과 사람, 금융과 사회, 금융과 시스템 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금융여건을 만들어야 금융이 재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금융환경은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와 가치에 부합하는 금융시스템이다.

 저자는 “금융은 강력한 도구다. 자본을 조성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의 조화를 이끌고, 그들에게 동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역설하고 있다. 미래의 금융시스템은 좋은 빚(good debt)을 통해 성장하고 거품이나 투기로 인한 변동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또 금융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지속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특히 자본소유의 분산을 촉진해 금융을 통한 사회적 참여를 확산시키자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친 집중화를 방지하고 참여형 기업을 확산시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발적 기부도 촉진해야 한다.

 쉴러 교수는 우리에게 묻는다. “넓은 의미에서 금융인들은 ‘새로운 금융시대’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생각, 노력,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현재의 금융인이나 미래의 금융인, 아니 금융소비자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앞서 나가야 할 것’을 찾고 있다면, 어쩌면 이 책은 그에 대한 여러 대안과 비전을 열어줄 것이다.

 쉴러의 구체적인 대안은 비록 산발적인 면이 있고, 큰 방향만 보여주고 있을지라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참여와 민주화, 신뢰도, 공정성, 비전을 갖춰야 현재 금융의 다양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금융시스템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합의해서 이끌어내는 미래의 현실화가 아닐까. 금융이란 제도를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예비 금융인과 CEO, 투자자, 정책당국자 모두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구본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구본성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영국 요크대 박사.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금융정책과 금융의 미래전략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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