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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 사마의를 다시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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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사마의(179~251)는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저평가된 캐릭터로 손꼽힌다. 중국의 관리학자 자오위핑은 사마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참으면서, 기다림으로써 마침내 원하는 것을 획득했다며 그의 처세철학을 높이 평가한다. 소설 삼국지의 원형 『전상평화삼국지(全相平話三國志)』삽화. [중앙포토]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365쪽
1만6000원

『삼국지』의 세월을 뛰어넘는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도원결의’ 유비·관우·장비의 뜨거운 의리인가. ‘삼고초려’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전략인가. ‘적벽대전’의 주인공 조조의 거침없는 질주인가.

 혹자는 여포와 초선의 사랑이야기에서 항우와 우희의 슬픈 결말을 떠올리고, 장판교에서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백만대군을 짓밟는 조운에게서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느끼며, 요절한 주유와 방통에서 못다 핀 아쉬움을 토로한다. 무엇보다 1233명에 달한다는 등장인물, 그들이 빚어내는 흥망성쇠가 박진감 넘치는 ‘대하드라마’의 흥행요소일 터이다. 그들이 엮어내는 희로애락에 때로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시울을 붉히며, 때론 인생무상을 탄식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다.

 아마도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마라’는 경고는 무궁한 이야깃거리와 끊임없는 권모술수에 유념한 말이 아닐까. 한편으론 천자부터 밑바닥 병졸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위하여, 또는 살아남기 위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간본성의 양면성에서 삶의 본질과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닮거나 배우고 싶은 캐릭터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출사표의 제갈공명, 난세의 간웅 조조, 오관참장 관운장, 백전백승 조자룡…. 취향에 따라서는 조조 앞에서 웃통 벗고 북을 두드리는 이형을 우러를 수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인물이 사마의일 것이다. 그는 제갈량의 꾀에 번번이 당하는 캐릭터이다. 성을 텅 비우고 유유자적 거문고 타는 제갈량의 공성계에 당하고, 호로곡에서 매복에 걸렸다가 소나기로 살아나지만, 죽은 제갈공명에게 쫓겨 달아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사마의는 제갈량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인물 설정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정도의 인물인가.

 삼국지의 마지막 장면은 곧 위진남북조 시대의 첫 장면이다. 후한(後漢)을 멸한 조조의 위(魏)를 거쳐 진(晋)의 기틀을 세운 이가 바로 사마의다. 삼국 쟁패의 소용돌이를 끝내고 천하통일로 이끈, 평범한 서생에서 새 왕조의 선제(宣帝)로 된 만만찮은 인물이다. 말하자면 샐러리맨에서 재벌의 신화를 쓴 셈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중국의 관리학자 자오위핑(趙玉平)은 이 책에서 그를 자기통제의 승부사로 정리한다. 드러내지 않고, 참으면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칼날이 맨 먼저 틈이 생기고, 창 끝이 가장 쉽게 마모된다.” 능력이 뛰어난 핵심 인력일수록 조직에서 가장 쉽게 상처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인생책략은 근면·자중·인내다. 제갈량에게 번번이 졌다지만 전투에서는 몰라도 전쟁에서는 승리한 것 아닌가. 맞붙어 싸우지 않고, 상대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에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도 어쩔 도리 없이 풍운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이러한 그의 처세와 주변관리 철학은 현대의 조직에도 적용된다. 이익으로 보통사람을, 가치관으로 뛰어난 사람을 얻는다거나 성공은 자원보다 자신감으로 이뤄진다는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천리마보다 이를 알아본 백락(伯樂)을 중히 여긴다는 인사관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자녀교육은 가르치되 질책하지 않고 모범을 보이되 말로 알려주지 않는 방식인데, 아들 사마소가 황제가 됐으니 제왕교육의 요체쯤이 되겠다.

 중국 CCTV의 ‘백가강단’에서 제갈량도 강의했던 저자는 “제갈량은 위인보다 더 위인 같고, 사마의는 보통사람보다 더 보통사람 같다”고 평한다. 인생길에서 제갈량이 자신의 내면을 비춰주는 등대라면, 사마의는 청결함과 부족함을 돌아보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닮아야 할까. 제갈량의 기재(奇才)가 선천적이라면, 사심과 잡념과 욕망에 갇힌 보통사람으로 황제가 된 사마의는 어떨까. 일독하면 깨닫겠지만, 그의 지독한 인내 또한 여느 장삼이사로서는 흉내조차 힘들지 않을까.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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