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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예방에 피로 잊은 10년|중대부중 「홍길동 교사」이희돌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탈선직전의 불량청소년들을 찾아다니며 선도하는 이희돌씨(38·영등포구 흑석1동 257)의 하루는 꼭두새벽부터 바쁘다.
현직은 중앙대학교부속중학 미술교사. 학생들 사이에 「홍길동」으로 불린다. 홍익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이래 10년째 그림을 그리며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홍길동」이란 그의 별명은 미성년자 출입이 금지된 극장에 몰래 들어가거나 유원지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휘파람이라도 불면 어느새 이씨가 수첩을 들고 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
새벽5시기상. 이미 몸에 밴 습관이다. 뒤따라 일어난 부인 황설자씨(32)가 조반준비를 하는 사이 이씨는 도복을 갈아입고 30분씩 태권도를 익힌다.
중학교에 다닐 때 시작한 태권도가 정식심사는 받지 않았지만 초단실력은 넘는다. 맨주먹으로 붉은 벽돌 1장은 거뜬히 격파한다.
이씨가 집을 나서는 것은 상오6시50분, 학교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정상출근시간은 8시20분이지만 이씨는 7시5분전에 학교에 나와 7시만 되면 교문을 지켜 선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과 머리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이씨가 학교에 나오는 시간이 늘 일정하기 때문에 수위아저씨는 이씨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 정도. 졸업 직후 영천농예학교에 있을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이씨는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이 단추가 빠졌거나 머리가 긴 학생이 있으면 일일이 적발, 지도 교사실에 이발기구를 갖추어놓고 머리를 직접 깎아주기도 한다.
하오4시쯤 수업이 끝나면 미술실에서 작품활동. 국전에 대비, 1백50호 화폭 1개와 1백호 짜리 2개에 손을 대고있다.
하오6시쯤 다른 교사들과 함께 퇴근,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씨에게는 다른 일과가 기다린다. 방과후의 교외생활지도를 위해 극장·유원지 등을 순회하는 것.
하오 7시쯤 집을 나서면 먼저 가까운 명수대극장으로 간다. 처음에는 신분증을 보이고 들어갔으나 이제는 검표원도 이씨가 나타나면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나 변두리극장에서 미성년자 출입을 금지하면 수입이 줄기 때문에 극장측은 이씨가 매일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별로 탐탁스레 여기지 않는다. 『불량만화가 크게 문제되고 있지만 미성년자의 극장출입문제도 큰 일입니다. 노골적인 「에로」물이나 「갱」영화를 감수성이 강한 15∼19세의 미성년자에게 보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했다.
극장을 나선 이씨는 한강변을 따라 3㎞ 쯤 걸어 노량진극장을 거쳐 제1한강교주변의 유원지와 용산역을 돈다. 먼길이지만 반드시 걷는다. 날 좋은 봄·가을에는 남산까지 걸어서 간다.
이렇게 순회하며 담배를 피우거나 부녀자를 희롱하는 「학생복 차림」이 눈에 띄면 이씨는 이내『학생, 이리 좀 와』하며 불러 세운다. 하루 한 극장에서 5, 6명의 학생을 적발하기 예사지만 대부분 가짜 학생이 많아 따뜻이 훈계해서 내보낸다.
이씨가 청소년 선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농예고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때부터. 포항과 경주에 있을 때도 청소년선도를 해도다 지난68년 서울에 와서는 색다른 선도에 눈을 돌렸다. 5만원 어치의 그림종이와 그림물감을 사들고 영등포구안에 있는 삼육재활원 등 22개 고아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불구고아와 불우청소년 고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고아들의 그림이 궤도에 들어서자 이 교사는 지난 70년12월24일 강남극장에서 첫 고아그림전시회를 열어 비뚤어진 고아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그들의 가슴속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붓을 내던지던 고아들도 차차 이 교사를 어버이처럼 따르고 같이 자겠다고 집에까지 따라오는 아이들도 나타날 정도로 정이 깊어갔다. 지난71년 「크리스머스」전날 노량진역전에서 제2회 고아그림전시회를 열었을 때는 역전근처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박종섭군(15) 등 3명이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찾아오기도 했다.
이씨는 또 토요일만 되면 흑석 1, 2, 3동 모범청소년들로 조직한 모범 청소년대를 이끌고 학교주변과 흑석동 뒷골목을 청소하고 「가정의 날」완장을 두른 채 조용한 계몽「퍼레이드」를 소년들과 함께 벌인다.
지난1월29일 어머니 임필수씨 환갑을 맞아 경북 월성군 안강읍 근계리 고향에 내려간 이 교사는 친척들을 설득시켜 어머니환갑을 조촐히 마치고 이웃의 고마움에 감사한다는 글을 인쇄해 붙인 신탄진과 백조 5백갑을 환갑선물로 동네 어른들에게 돌려 새 생활운동을 펴기도 했다.
이씨는 60년 홍익대미술과를 졸업, 그동안 국전에 3번 입선, 월5만원의 봉급으로 시유지 위에 마련한 15평짜리 집에서 1남1녀의 가장으로 빠듯한 살림을 꾸리고있지만 청소년선도를 위해서는 봉급과 시간을 아낌없이 쪼개 쓰고있다.
『보다 나은 앞날을 믿는 사람은 청소년선도를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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