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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통 달러'로 만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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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제 외환딜러들은 이를 해명성 발언으로 치부하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최근의 달러화 약세에 대해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는 그의 전날 발언에 더 진심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시장의 이런 판단에 따라 달러화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하락세를 이어가 한때 4년래 최저치인 유로당 1.10달러까지 밀렸다.

달러는 유로에 대해 지난해 11월 이후 7%나 떨어졌으며, 최근 1년 동안 20% 이상 하락했다.

이는 1995년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취임하면서 취한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미국 정부의 의중이 '약한 달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보통 달러'로 바뀐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만일 실제로 환율정책에 변화가 있었다면 국제자금의 흐름과 세계무역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달러, 왜 약세인가=직접적인 원인으론 이라크 사태가 꼽힌다.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쟁이 달러화 금융자산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당장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실물경제의 회복이 더뎌지고 증시 등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다른 이유로는 무역과 재정에서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 정부가 사실상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전년보다 21.5%나 늘어난 4천3백52억달러를 기록했다. 또 올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전쟁 및 더딘 경제회복으로 백악관 예상치(3천40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4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월가에서 나오고 있다.

여기에 3년 연속 증시 하락으로 인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해외자금이 줄어든 것도 가세하고 있다. 최근의 달러화 약세를 90년대 후반 '신경제'를 앞세워 과대평가된 미국 경제가 본래 위치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디까지 떨어질까=이라크 사태가 조기에 종결되면 하반기부터는 미국 경기의 회복과 더불어 달러화 시세도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런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은 지난해 4분기 미국의 성장률이 추정치의 두배인 1.4%를 기록했으며, 민간기업들의 설비투자가 6.2%나 증가한 점에 주목한다.

노동생산성도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전쟁위험만 사라지면 달러의 하락세가 멈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유럽과 일본 경제도 미국 못지않게 허덕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달러 약세가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사태가 길어지면 미국의 소비가 위축돼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달러화 가치는 유로당 1.15달러까지 미끄러질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 월가에는 많다.

부시 경제팀은 달러화가 이 정도로까지 떨어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기 때문에 유럽에 금리 인하를 채근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잇따른 금리 인하로 이미 유럽의 금리가 더 높은 상황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사진설명>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올해 새로 발행되는 지폐에 들어가는 사인을 하는 행사에 참석해 10달러 지폐 모형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권에는 스노 장관과 로자리오 마린 재무부 출납국장의 사인이 들어간다.[워싱턴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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