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재발명 시대, 창문 바꾸고 단열재 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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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리 로빈스 회장이 태양열로 키운 바나나를 어깨에 얹고 있다. 미 콜로라도주 해발 2200m 산 중턱 로키마운틴 연구소 사무실에서 키운 것이다. [사진 에머리 로빈스]

미국 ‘로키마운틴 인스티튜트(연구소)’의 에머리 로빈스(66) 공동창립자 겸 회장은 에너지 효율화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에너지 정책을 연구했고, 그 업적으로 2009년 타임(Time)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최근 ‘불의 재발명’(Reinventing Fire)이란 용어로 에너지 효율화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설파하고 있는 그는 ‘네가와트(Negawatt)’란 개념도 주창했다. 에너지 절약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잡았다. 네가와트는 LED전구 같은 에너지 절약 상품들을 사용함으로써 절약된 에너지를 의미한다. LED전구는 일반 백열등에 비해 에너지 소모를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 90년에는 ‘하이퍼카(Hypercar)’라는 초경량 차체의 운송 수단을 고안하기도 했다.

박원순(左), 로빈스(右)

 ‘2013 서울 국제에너지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한 로빈스 회장은 지난 12일 서울시청 신청사로 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남의 자리도 가졌다. 로빈스 회장은 박 시장에게 “창문을 바꾸고 단열시설을 구축하면 에너지 비용의 38%를 절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 대도시 시장들은 에너지 정책 추진에 적극적”이라며 “서울 역시 시장이 에너지 정책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방안 수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바나나 나무를 키우는데 바나나가 실제로 열린 모습이다. 사무실에서 쓰는 에너지의 99%가 태양열로 조달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사무실, 즉 로키마운틴 인스티튜트는 미 콜로라도주 스노매스(snowmass)의 해발 2200m 산 중턱에 있다.

 - 로키마운틴 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정부와 독립된 비영리 연구단체다. 세계적인 에너지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 깨끗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다. 교통·건물·전력 등 에너지가 사용되는 분야가 다 연구대상이다.”

 『소프트 에너지 패스』(Soft Energy Paths, 1979) 등 그가 펴낸 책은 23권에 달한다. 소프트 에너지 패스란 태양열·풍력·지열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일컫는다. 그는 “석유 등 액체연료는 원료 운송 등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전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많이 낭비된다”고 강조했다.

 - 미래의 에너지 대책은 뭔가.

 “‘소형이 유리하다’는 거다. 이건 2002년 발간한 내 책 제목이기도 하다. 덴마크 농장에선 대부분 풍력을 이용한다. 그러면 전기가 끊길 걱정도 전력선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전기자원을 분산화하는 전략이다. 이렇게 독립된 분산전원을 사용하는 게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다. 기존 대도시가 광역 전력시스템(메인그리드)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독립된 분산전원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불의 재발명’, 에너지 효율화로 매년 5조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하는데.

 “자동차 연료효율을 높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중량을 줄이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을 200개 정도 줄이면 에너지효율을 10% 높일 수 있다. 주택에서도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 여름철, 열에 반응해 어두워지는 창문이나 태양열을 조절하는 특수 코팅 등을 사용하면 된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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