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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는 「연기」에 능란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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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배우에 농락 당한 경찰수사였다. 사건발생 후 14일만에 실마리가 풀린 이른바「안방의 총격사건」은 배우로서 사양길에 접어든 방성자양(30)이 혼신의 힘을 다해 안간힘을 쓴 각본에 경찰이 어처구니없이 당했다는 결론마저 안겨다준 셈이다.

<파다했던 소문|동침남자 있다>
지난14일 사건발생직후부터 도둑에게 총을 쏜 것은 방양이 아닌 동침남자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경찰은 방양의 위장진술의 벽을 뚫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방양의 「가운」에서 탄약 흔이 검출되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탄약 흔 감정결과 통보는 숱한 의문점을 남겨둔 채 방양을 총격의 진범으로 쉽게 단정토록 했고, 단지 총기출처 하나 밝혀내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수사라는 비난 속에 지난21일 사건을 일단락 짓고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던 것이다.
27일 사건전모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건개 서울시경국장은『총기출처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비난을 씻고, 방양의 뒤에 특권층이 있어 수사를 중단했다는 불신감을 없애 신뢰받는 경찰의「이미지」를 높이고자 재수사한 결과 재벌 함 모씨의 2남인 공군장병 기준씨(26)의 범행임을 밝혀내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고.
경찰의 주장은▲처음부터 방양의 진술이 횡설수설하는 등 진실성이 없었고 ▲도둑 김영남(34) 이 방안에서 남자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점 ▲사건직후 방양의 옷장에 남자 옷 3∼4벌이 있었던 것이 곧 치워진 점등 의문점이 있었으나 변호사 이병용씨가 사건에 관여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통에 수사를 일단 매듭짓는 양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후 방심의 허를 찌른 것.
경찰은 방양을 불구속으로 송치한 다음 계속 방양이 단골로 다니던 대혜 의원과 윤희 미장원(충무로2가) 주변을 중심으로 정보수집에 나서 ①함 모씨의 둘째 아들 기준씨가 최근 방성자양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②함기준씨가 최근 휴가 나올 때마다 권총을 자랑삼아 친구에게 보여줬다 ③사건직후 함씨가 잠적했다 ④사건당일 방양의 집에 있던「크라운」자가용승용차는 D산업의 함모씨 차에 틀림없다는 내용이었다.

<당황하는 함 숨기며 모든 책임 내가진다>
함기준씨가 경찰에 연행된 것은 26일 상오. 공군모기지로 원대 복귀한 그는 경찰의 수사손길이 미치자 모든 것을 체념한 후 경찰심문에 순순히 응했다.
처음에는 도둑 김영남이 자기가 쏜 총에 맞지 않은 줄 알았으나 곧 도둑이 다 죽어 간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를 위로한 것은 방양 이었다고 했다.『이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당신 아버지의 명예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진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숨어 있다가 도망가라』는 방양의 말은 그 순간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총성을 듣고 이웃이 웅성거리고 방범대원·검찰관이 밀어닥친 것은 사건발생 30분 후. 불과 20∼30분 사이에 방양의 기지는 번득였고 함씨는 안마당에 숨어 있다가 통금해제가 되면서 타고 온 차마저 버려둔 채 방양의 집을 빠져나갔다.

<사건 수습해 달라 방양에 백50만원>
맨 처음 피신한곳이 영등포구 구로동에 있는 그의 아버지 승용차 운전사의 집. 그곳에서 나흘을 묵으면서 방양에게 사건 수습비 조로 1백50만원을 건넸다, 신문지상에 방양의 단독범행고집 등이 보도되자 한결 마음놓고 원대복귀 했다는 자백이었다고 특히 방양의「가운」 에서 탄약 흔이 검출되어 총은 그녀가 쏜 것으로 경찰이 단정했다는 소식은 더할 나 위없이 안위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가운」은 남녀공용으로 사건당일을 비롯, 주로 함기준씨가 사용했다는 것.
경찰진술에서 함씨는『본처와 이혼하고 방성자와 정식결혼 하려했다』고 털어놓았다.『무엇이 어떻게 좋은가는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성자가 아무튼 좋았다』는 그는, 지금 그 나이또래의 젊은이들에게는 잘 알려진「플레이보이」.

<성자가 어쩐지 좋다 본처에겐 잘 안 들러>
특히 함씨는 서울 한남동 726의 대지 2백여평에 건평1백평짜리 본집에 미국서 사귀어 결혼한 본처 김모씨(25)와 두 아들(4세·2세)이 있지만 최근에는 거의 들르지 않고 지난해 추석 때 한번 다녀간 정도로 별거 중이었다.
함씨가 뭇 남자 편력으로 소문난 방양을 알게된 것은 지난해 4윌. D산업 독일인 기술자의아내이자 방양의 친구인 조모여인의 소개가 있은 다음부터였다. 영화배우, 미모에다 연상의 여인이란 호기심으로 가득 찬 함씨와 인기하락으로 경제력이 필요한 방양의 결합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이를 사랑했기에 사회물의 감수했다>
사건 전모가 밝혀지자 방양을 잘 아는 연예가에선『방성자와 깊이 사귄 남자 치고 잘된 사람 못 봤다』고 입방아를 찧어대지만, 28일 함씨가 공동 진범으로 살인 미수 등의 협의로 구속되는 순간까지도 방양은『그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회의 물의를 감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도둑 때문에 신세를 망친 함씨와 방양 등 두 사람과, 졸렬한 수사로 망신을 당한 경찰만의 일은 아닌 성싶다.<백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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