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공간산책] 소주바 '고추와 마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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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동네 어귀에서 노란 불빛을 깜박이던 포장마차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하다. 영원한 서민의 친구 포장마차.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퓨전 소주바 '고추와 마늘'은 그런 포장마차의 미덕이 느껴지는 곳이다. 가게의 전면에는 50가지가 넘는 포장마차의 전형적인 메뉴가 조그마한 나무판에 붓글씨로 장식돼 있다.

공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동네 포장마차는 배울 점이 많다. 우선 단순하고 직설적인 구조와 형태가 부담스럽지 않다. '고추와 마늘' 역시 단순하고 명쾌하게 나누어진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모양새가 포장마차와 닮았다. 복층으로 만들어진 내부에는 고추와 마늘 그림이 그려진 배너를 늘어뜨려 시원한 공간감을 강조한다.

'고추와 마늘'은 입구에 재료를 다듬고 저장하는 1차 주방을 두고 음식 재료를 디스플레이 소품처럼 사용하고 있다.

좀 더 들어가면 각종 구이류를 조리하는 오픈 주방이 나타난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요리사의 퍼포먼스를 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가장 공들인 곳은 조리 공간인 듯하다. 대나무 등으로 장식된 조리실 뒷벽은 야외 바비큐 공간을 연상케 한다.

가게 뒤 한 쪽에 있는 작은 마당은 이 집의 백미다. 세평 남짓한 야외 공간이 좀 높다싶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오직 하늘만 뻥 뚫려 보이는 곳이다. 볕 좋은 날 접이문을 활짝 열면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기분 좋은 테라스가 될 터다.

함박눈이 내리던 지난 겨울의 이 집 마당을 나는 잊지 못한다. 밤이 되자 바닥에서 하늘로 켜져 올라간 조명을 받아 커다란 눈송이의 밑면이 환하게 빛나며 내려앉았다.

시간이 멈춘듯 온전히 서정적인 순간이었다. 내 안의 서정성을 일깨우는 것. '고추와 마늘'은 포장마차가 가진 최고의 미덕을 그렇게 공유하고 있다.

김주원 ㈜엔케이디자인소장, 임현동 기자

***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고추와 마늘'은 퓨전 안주를 소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실내 포장마차다. 꼬치류는 1천~4천원이며 탕 종류는 1만5천~3만원이다.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문을 연다. 02-511-0195.

<바로잡습니다>

◇3월 7일자 베터라이프 섹션 E23면 중 소주 바 '고추와 마늘'위치를 서울 청담동에서 신사동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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