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외교곡예 상업중립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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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특파원】「상업용 중립주의」. 서울 종로 바닥 만한 섬나라가 열강들을 상대로 벌여온 뱃심 좋은 외교 곡예는 지금 이곳에서 심심찮은 화제가 되고 있다. 지중해의 소도 「말타」를 둘러싼 국제적인 정치풍랑을 두고 하는 얘기다.
전 인구 32만 명을 다스리는 「말타」의 「도미니크·민토프」정부는 영국에 이 섬 안의 영 군기지 사용 비를 곱으로 올려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1월15일 안에 병력을 거둬가라는 통첩을 내놓았다가 15일 양측 합의 최후 통첩을 철회했다.
그 요구액은 년 4천6백만「달러」거기에 『만약 응하지 않는다면…』하는 약간의 위협적 주석이 붙었음은 물론 이다.
예컨대 소련과 손을 잡겠노라하는 따위의.
이에 대해 영국의 「히드」정부는 한때 『그런 억지에 굴하느니 물러가 주마』고 역시 배를 퉁겼고 살수해버릴 가능성은 꽤 큰 것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그렇게되면 그것은 1799년이래 이 섬에 머물러온 「대영제국해군」기지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러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데 있다.
그야말로 코딱지 만한 크기와는 달리 이 「말타」의 귀추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제국이나 소련과 같은 강국들에 적지 않은 관심거리가 되고있다.
근년 소련의 지중해 함대의 급격한 증강이 「나토」동맹국 군사수뇌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해온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한때 영국의 「제국항로」의 요충을 이뤘던 「말타」가 소련해군의 기지나 집항지가 되는 것이 영국 및 「나토」동맹국들이 「말타」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게 「민토프」 「말타」수상이다. 또 이곳의 중립적인 「업저버」들까지도 흔히 얘기하는 그의 소위 「상업용 중립주의」라는게 꽤 장사가 될 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토프」가 영국기지의 철거까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더 내라는 것이지 자기 땅에 외국군사기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상 1964년 독립직후 「말타」가 영국과 맺은 방위협정에 따르면 「말타」가 군사적으로 미·소양측간 중립을 지키는 반면, 영국에만은 적절한 보상(기지사용료포함)을 대가로 기지사용을 허락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보상이 끊어진다면야 중립주의 어쩌고가 상관될게 없는 노름이고, 또 보상만 듬뿍 한다면야 소련인들 고객으로 못 삼을까보냐 라는 것이 이 소국 의회 내에서 단1석의 다수석으로 정권을 잡고있는 「민토프」의 뱃심좋은 「조반외교」라는 것이다.
이곳 소식통들은 미·영을 비롯한 「나토」동맹국들이 「말타」를 소련 해군 손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목적 때문에서도 영군이야 가건 말건 결국 「민토프」의 4천6백만 「달러」공갈수에 화툿장을 던지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민토프」의 4천6백만「달러」요구에 애당초 영국은 약2천3백60만「달러」까지는 주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두 당사국과는 달리 소련세력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나토」회원국들은 약3천3백만「달러」로 흥정을 붙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토」측에서 제안한 이 액수는 영국정부의 제안 액보다 약9백만「달러」이상이 많은 것인데 이 차액의 대부분을 미국이 부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새삼스런 것은 아니지만 중립주의라는 것도 이를테면 상업적 흥정밑천으로 단단히 한몫을 볼 수 있는 선례를 낳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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