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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제24화>발명학회(6)|육돈상<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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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과학 데이 행사>(상)
과학 지식 보급회가 제1회 과학「데이」행사의 하나인 과학 지식 보급 좌담회 석상에서 싹튼 것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제l회 과학「데이」행사도 꽤 요란했거니와 특히 제2회 때는 서울 장안의 이목을 끌 정도로 대대적인 행사가 벌어졌었다.
오늘날에도 과학기술처가 발족한 4월2l일을 「과학의 날」로 정해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이고 있다. 금년으로 벌써 제5회「과학의 날」을 맞게되는 셈이지만 내용의 다양성이라든지 참여의 범위 라든지에 있어선 해방전의 과학「데이」행사가 훨씬 앞서지 않았는가 생각된다.『과학에 대하여 황무지인 조선을 과학화하자』는「모토」아래 34년 2월28일 하오5시 종로 중앙 기독청년회관에서 제1회 과학「데이」실행회가 이인씨 사회로 열렸다. 참석자는 모두 31명이었다. 우선 의장으로 김창제씨, 서기로 강진두씨를 뽑은 다음 김용관씨가 과학「데이」에 관한 원안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당초엔 과학 주간을 만들자던 것이 과학「데이」로 바뀌고 날짜는「종의 기원」의 저자「찰즈·다윈」(1809∼l882)이 서거한 4월19일로 정하기로 했다.
전 사회적으로 과학지식을 고취 앙양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되 부인과 아동을 위해선 환등과 활동사진을 보여주고 중등이상의 사람을 위해선 강연회 실험회를 열고 그러는 한편으로 견학단을 조직해서 과학·박물관·공장 중앙시험소 등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계 인사들은 과학 지참 보급을 위한 좌담회를 열고 또한 그들은「라디오」·신문·잡지 등을 통해 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로 결정했다. 과학「데이」실행회는 총무부·재무부·교섭부·설계부·통신부·선전부·연락부·정리부·경호부 등 9개 부로 구성하기로 합의를 봤다. 또한 이 자리에서·과학「데이」를 위한 「포스터」 와 과학「데이」노래를 만들자고 재의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데이」행사를 위해「포스터」가 요란하게 도처에 나붙고 과학의 노래가 불러지기는 이듬해부터가 아니었던가 싶다. 과학「데이」행사가 장안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화려해진 것은 과학 지식 보급회에 의해 추진된 제2회(35년4월19일)부터였기 때문이다.
아뭏든 과학「데이」보급회가 과학「데이」행사를 벌일 것을 결정했다는데 대해서는 당시(우리 나라 사람이 낸 신문에 기사로 보도됐을 뿐 아니라 사설에서도 대 환영을 받았다.
조선 중앙일보에서는 3월5일자 신문 사설에서「문화 운동에 큰 도움」이란 제목으로 이를 다뤘고, 역시 같은 날 조선일보에서는「과학과 조선」이란 제목아래 이에 대해서 사설로 논했으며 같은 날 동아 일보에서는「과학데이회와 그 사업」이란 제목아래 사설로 다뤘던 것이다.
이를 3개 신문은 과학「데이」를 맞아서도 이에 대해서 사설로 보도로 크게 다뤘다. 특히 제2회부터는 신문사들이 자동차 행렬과 기 행렬을 위해 자동차와 기, 그리고「포스터」등을 제공할 정도로 과학「데이」행사에 힘을 기울였다.
과학「데이」실행회에도 윤치호 이인 송진우 여운형 김성수 김병노씨 등 저명한 인사들이 적극 참여해서 빛을 내주었다. 과학「데이」행사를 위해선 위원 각자가 5원 씩 책임지기로 했지만 김성수씨 등이 뒤에서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기록엔 안 남아 있어도 당시 관계자들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제l회 과학「데이」행사도 첫번치고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김용관씨가 4월16일부터 동18일까지「과학 지성 보급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했고 19일엔 김창제 위원장이「과학의 가치」란 제목으로 방송을 했다. 그리고 4월l9일 하오8시엔 중앙 기독 청년회관서 과학「데이」기념식과 아울러 강연회가 있었다. 8백 여명이 모인 가운데서 이날 이품섭씨가「과학의 개념」이란 제목으로, 이채호씨가「산업과 발명」이란 제목으로, 안동혁씨가「화학공업의 현대와 장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그리고 20일엔 남21명, 여53명으로 조직된 견학 단을 과학관등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21일에 하기로 했던 수송 국민학교 등에서의 활동사진 상영은 사정에 의해 못했다. 4월22일 하오 백합원에서 열린 과학 지식 보급 좌담회에서 과학 지식 보급회가 싹튼 것은 몇 번 말한 대로다.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한 개의 시험관은 전세계를 뒤집는다」는 등의 표어가 박힌「포스터」가 사방에 나 붙고 과학의 노래가 작사 작곡되어 불려지고 한 것은 제2회 때부터다.
특히「한 개의…」라는 표어 때문에 종로서 고등계 형사가 몇 번이나 찾아와서 그 본의가 뭐냐, 수상한 뜻이 아니냐고 따지는 바람에 관계자가 진땀을 흘린 일도 있었다고 과학의 노래는 김안서 작사 홍난파 작곡이었으니까 그 역시 지금 생각하면 자랑할 만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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