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창조경제 막는 스톡옵션 문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
벤처리더스클럽 회장

정부는 창조생태계 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벤처기업을 9년간 경영하고 귀국 후 한국에서 17년째 벤처를 이끌어온 필자가 보기에는 정작 중요한 사안을 놓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벤처기업에 가장 절실한 문제는 인재 유치다. 필자가 미국에서 벤처를 했을 때는 스탠퍼드대와 MIT 출신 인재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었는데 한국은 다르다. 지금처럼 고급 두뇌들이 의사·변호사·대기업 같은 안정적인 직업에만 몰려서는 창조경제가 이뤄질 수 없다.

 미국에서 톱 클래스 인재들이 벤처에 들어가는 이유는 스톡옵션을 통해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자금이 모자라는 초기 벤처는 인재들에게 적은 연봉을 주는 대신 싼값에 회사 주식을 살 권리, 즉 스톡옵션을 준다. 나중에 회사가 성장해 상장에 성공하면 그 권리를 행사해 주식을 사들이고 증시에 팔아 큰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기업 상장 이후 스톡옵션 남발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 이를 규제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마련됐고 미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도 스톡옵션 발행과 관련 비용을 기업회계에 반영토록 했다. 이는 모두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만든 규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비상장기업에까지 이를 확대 적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회계처리라는 기술적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인재영입 수단인 스톡옵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인재가 벤처로 유입되는 파이프라인을 차단하고 벤처 생태계의 근본을 파괴하고 있다.

 첫째 문제가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주식 보상 비용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로 돈을 쓰는 게 아닌데도 회계장부에 돈이 나간 것처럼 기재돼 불이익을 당한다. 회사 순익이 줄고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친다. 주식 보상 비용을 줄이기 위해 회사는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빨리 행사토록 종용하는데 이때 둘째 문제가 나타난다. 직원들에게 주식 평가가치와 행사가격의 차이를 소득으로 간주해 최고 35%의 소득세를 내도록 한 것이다. 아직 상장하지도 않은 회사의 주식을 현금으로 사기도 버거운데 이에 더해 세금까지 내라고 하니 직원 부담만 커지게 된다. 결국 돈 없는 직원들은 스톡옵션을 포기하기 일쑤고 스톡옵션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주식을 파는 시점이 아닌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매수하는 시점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이며 이는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 당연히 주식을 처분해 차익을 실현할 때까지 세금 납부를 연기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의 세제는 주식거래 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고 있어 과세 연기가 간단치 않다. 스톡옵션을 통해 취득한 주식인지 주식시장에서 매입한 주식인지 구별하고 또 어느 시점에 얼마에 매입했는지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서는 스톡옵션을 통해 얻은 이익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벤처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은 회사 가치가 낮았을 때 입사해 적은 연봉 대신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평가 주식을 초기에 산 투자자처럼 자신의 돈을 투자해(적은 급여를 받고) 주식을 낮은 가격에 산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장회사의 회계기준인 IFRS를 비상장 벤처에까지 일괄 적용하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미국처럼 비상장 벤처에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스톡옵션에 따른 주식보상비용을 반영하지 않게끔 하고 행사가격을 기업 자율에 맡겨야 스톡옵션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잘못된 제도들을 방치하고 벤처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황무지에 나무만 옮겨 심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격이며 과녁을 잘못 겨냥하고 화살만 많이 쏘는 격이다.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
벤처리더스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