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 세계 제조업 혁명 불러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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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기계로 원자·분자를 벽돌처럼 쌓아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시대가 온다. 이 같은 나노기술로 모든 것을 창조할 수도, 분해할 수도 있다.” 나노기술의 선구자 에릭 드렉슬러(사진)가 1986년 출간한 『창조 엔진』에서 풀어낸 미래의 모습이다. 그는 원자와 분자를 조립하는 기계만 있다면 자동차를 단돈 5달러에 사고, 길거리에서 음식 제조기를 통해 식사를 해결하는 삶이 가능하다고 예견했다.

 드렉슬러는 세계 최초로 나노미터(nm· 1nm는 10억분의 1m)의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다. 27년 전 드렉슬러가 이 이론을 처음 내놓았을 당시만 해도 ‘과학자의 망상’ 취급을 받았지만 이젠 글로벌 기업들이 ‘나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공정기술을 30~40nm까지 줄여나간 것이 그 예다. 머지않아 나노 기술을 바탕으로 강철보다 수십 배 강하면서도 가벼운 고분자 물질, 도서관 분량의 책을 담을 수 있는 컴퓨터칩 등의 제조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테크플러스 2013’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할 예정인 드렉슬러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테크플러스 2013’은 ‘creativity@technology 창의적 기술, 새로운 세상’을 주제로 14일 서울 능동로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당신이 개척한 나노기술은 무엇인가?

 “전문용어로 ‘원자 정밀 제조(APM)’라고 한다. 나노 어셈블러(원자 수준에서 물질을 제조해 내는 장치)로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원자·분자를 적절히 배합·결합해 기존 물질을 변형하거나 개조하고, 신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0 혹은 1을 나타내는 최소 단위인 ‘비트’(bit)로 수십, 수백 메가바이트(MB)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하다. 앞으로 제조 분야에서 혁명을 불러올 것이다.”

 -나노기술을 ‘궁극의 기술’이라고까지 평가하는데.

 “제품 생산 과정을 생각해 보자. 공장 안에서 수많은 부품을 조립하고 옮겨서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나노 단위로 물질(부품)을 이동하고 조합해 새로운 물질(제품)을 만들어내는 APM은 지금의 공장처럼 넓은 장소나 커다란 장비가 필요 없다. 또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빠른 속도로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상용화되면 우주 자동차, 각종 첨단 의료장비, 다양한 기능의 휴대용 디지털 기기 등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는데.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있다. 원자만 한 크기의 나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원자만 한 크기의 나노 장비가 필요한데,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가 ‘철’을 다루기 위해 철보다 더 단단한 도구를 만든 것처럼 조만간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부정적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

 “경제·사회적으로 잠재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첨단 무기를 통한 군비 증강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 당신을 ‘몽상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몽상가들은 과학적인 자료와 이론에 근거해 논문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APM은 물리 및 공학 이론으로 입증된 개념이다. 단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구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내 이론에 의구심을 갖기 전에 관련 논문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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