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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송년'71…사건의 주역을 찾아|KAL기 납북을 저지한 기장 이강흔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은「하이재킹」사를 읽고 있습니다.』지난 1월23일 KAL YS-11기를 조종, 속초에서 서울로 오던 길에 나이 어린 김상태의 항공기 납북기도에 부딪쳤을 때 노련하고 용감한 솜씨로 승객의 안전을 지켰던 이강흔 기장(37)은 그때를 돌이켜 볼 때마다『승객과 기체의 피해를 완전 방지할 수 없었을까』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고 때 왼쪽 눈을 다쳐 5월20일까지 1백20여일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는 이 기장은 한 때 실명의 우려도 있었으나 다행히 완쾌되어 다시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 전국항로를 나는 가운데 가끔 서울∼속초도 날게되는데 그 때 생각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기장은 납북기도 사건 때 전명세 동료를 잃었고 선배 박완규 기장이 중상을, 승객 여럿이 다친 것을 통 분히 여기는 마음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는다고 말한다.
범인과의 대결에서 간신히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는 범인이 조종실에 나타났을 때 조종사로서 번개 같이 떠오른 생각은「승객의 안전」 을 지키는 것,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었고 외국 조종사 같으면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겠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싸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되돌아보았다.
이 기장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뇌면서 그 때는 침착하게 대처한 승객과 공안 원·승무원들이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위기를 극복한 것이며 승객들의 협조가 없었으면 전원 몰사의 위기가 왔을지도 몰랐다고 자기의 공보다 승객들의 협조에 감사했다.
이 기장은 항공생활 15년-. 비행 1만 시간을 돌파했는데 극히 적은 비율의 납치봉착에 악운이 닥친 것은 불행이지만 어차피 그 시련을 KAL의 어느 누군가 경험할 바에는 자기가 극복한 것이 다행이라고도 말했다.
사건당시「매스컴」에서 자기더러「용감한」「기지에 찬」 파일러트 라고 찬사가 있으나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고 겸손해하는 이 기장은 그 때 눈만 다치지 않았으면 범인을 때려 누일 수 있었을 터인데- 하고 아쉬워하면서 승객과 승무원들이 말없는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는 동작에서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갔던 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일이라고 했다.
또 수류탄의 기내폭발 등으로 비행기가 몸부림칠 때 공군기가 출동, 위협받았을 때는 든든했고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이 기장은 항공기 납치에 있어서 수류탄을 든 납치기도 범은 유례가 없었던 것 같다면서 따라서 대처하는 방법도 뚜렷이 없어 연구의 예로서 남을만하다고 했다.
그는 수류탄을 던져 승객과 비행기를 살리고 승화한 전명세 기장의 마지막 모습은 언제나 눈시울에 선명히 떠오른다면서 그 외로운 죽음에의 뜻을 실려야 한다고 했다.
중상을 입었던 박완규 기장(승진) 은 아직도 왼손이 완쾌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장은 이제 비행시간 1만 시간을 넘어 며칠 전 1만 시간 돌파로 표창을 받았고 내년부터는 기종을 바꿔 제트기인 DC-9를 조종하게 되었다는 것.
이제 지상교육은 마쳤고 새해1윌15일께는 비행 훈련 차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그일 때문에 유명해졌어요.』 이 기장은 이제 납치기도 범과의 대결에서 얻은 경험을 안전항공의 지식에 활용할 만큼 폭이 넓어졌다.
한 때『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나돌 때 눈을 주겠다는 독 지 학생들이 있었다면서 언젠가 한번 그들을 만나 차라도 나누겠다고 했다.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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