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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 각 호텔 화재상보|「불덩어리 22층」힘드는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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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성탄절인 25일 22층의 서울 대연 각 호텔이 때아닌 불길에 휩싸여 수많은 투숙객이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다 온몸이 으깨어져 죽거나 질식 또는 불타죽는 끔찍한 대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상오9시50분쯤 동 호텔 2층에서 불이나 약1시간만에 거대한 빌딩이 불덩어리가 되자 비상계단이 미비, 탈출하지 못한 투숙객들은 창가에 매달렸다가 낙엽처럼 떨어졌으며 침대의 매트리스를 등에 메고 스스로 투신, 건물밑 바닥에는 시체와 피의 수라장을 이루었다. 10층에 매달려『살려달라!』면서 30분을 버틴 20세 가량의 청년은 9층에서 오른 불길에 소사하는 등 이 호텔은 대 화재로 인한 아비규환을 빚었다. 경찰은 이날 상오 11시 5분쯤 불길이 전 건물을 휩싸자 소방작업을 포기하고 인명구조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힘이 거의 못 미쳤고 헬리콥터를 동원했으나 옥상까지 연기에 싸여 내리지를 못하고 로프를 내려서 겨우 수명밖에 구조하지 못했다. 불길은 하오까지 내부를 계속 연소중이며 경찰은 특별조사반을 편성, 진상조사에 나섰다.

<커피숍서 "펑">
▲발화목격=이날 극동 무선 사 종업원 이연진씨(27)는 볼일로 2층에 갔다가 커피숍 주방에서『펑!』하는 폭음과 함께 불길이 복도로 나왔다고 말했다.
또 14층 5호실에 투숙했던 일본인 호장수웅씨(39·동경부소금정시관정남정)는 상오 9시30분쯤 2층 그릴에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던 중 역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밀려나왔다고 말했다.
호장 씨는 비상구를 찾아 뛰어나와 옆 건물 지붕 위에 뛰어내려 네온사인을 타고 내려와 목숨을 건졌으나 14층14호실에 투숙중인 친구 히르아끼·소메가와씨(48)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호장씨는 지난 15일 내한, 부산 등지에서 일을 보고 이 호텔에 투숙했는데 경찰은 화인이 주방의 프로판가스의 폭발로 추정했다.

<유리조각이 비오듯>
▲화재현장=상오 10시10분쯤 9층 유리창문에 매달렸던 20세 가량의 한 소녀는 치솟는 불길과 연기를 무릅쓰고 30분 동안 창틀에 매달려 구조를 외쳤는데 사다리가 4층까지밖에 못 미쳐 구조가 늦자 10시50분쯤 지친 끝에 20m여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죽었다.
호텔 동쪽 창문마다 사람이 매달려 침대커버와 담요 등을 늘어뜨리고 내려오려 했으나 호텔건물이 워낙 높은데다가 담요가 짧아 주렁주렁 매달린 채 고함만 치고 있었다.
상오10시30분쯤 호텔주변에는 1만여 명의 군중이 몰려 창들에 매달려 흰 손수건을 흔들며 아우성치는 투숙객들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발을 굴렀다. 그러나 소방차의 물길은 4층밖에 미치지 못해 화염은 10층12층…자꾸만 위층으로 치솟아갔다.
사람이 떨어질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던 시민들은 참혹한 광경을 안 보려고 고개를 돌렸고 부녀자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경찰은 10시40분께야 기동경찰 50여명을 동원, 교통을 차단하고 경비에 나섰는데 호텔 앞 보도에는 떨어져죽은 10여명의 시체가 쌓여 있었고 선혈이 주변을 붉게 적셨다.
동쪽 20층의 창문마다 20여명의 남녀투숙객들이 매달려 고개를 내밀고 옷가지 등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몸부림쳤다.
이들 중에는 남녀가 껴안은 채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 나오는 창문에서 구조를 부르짖다가 연기에 쫓겨 10여명이 몸을 날려 떨어졌다.
10시50분쯤 7층 창문에 매달려있던 한 쌍의 남녀는 침대시트와 옷가지를 이어서 불길이적은 6층으로 내려오려고 시도하다가 남자는 무사히 피했으나 여자는 줄을 놓쳐 그대로 추락했다.
충무로 쪽 뒷면 5층 별채에서도 20여명의 남녀들이 창문과 옥상에 몸을 내밀고 애타게 옷가지를 들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뒷면 별채에 있던 남녀들은 11시쯤 사다리 차가 도착, 그중17명이 구출되었다.

<사다리 차 4대뿐 7층 이상 손 못써>
▲진화작업=이날 경찰은 서울의 전 소방차를 출동시켜 진화했으나 4대뿐인 고 가사다리 차, 물길이 6층까지밖에 미치지 못해 7층부터 22층까지의 진화는 손을 쓸 수 없었다.
위층으로 연소속도가 너무나 빨라 소방차가 물길을 뿜는 사이 불길은 위층으로 번지기만 했다.
이날 사다리 차를 제외한 다른 소방차들은 고층빌딩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경찰은 상오11시5분쯤 진화에는 사실상 손을 떼고 구조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20층서 구조대기 중 8∼9명이 질식사, 생환자의 말>
11시30분20층 나이트클럽 옥상에서 구호를 기다리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밧줄을 타고 4명이 구조, 그중1명이 공중에서 떨어져서 숨지고 이범상씨(35)등 3명은 KAL빌딩 헬리포트에 착륙했다.
구조된 이씨에 의하면 스카이라운지에서 불길이 나이트클럽으로 번지면서 자기와 같이 구조를 기다리고있던 사람들 중 8∼9명이 질식하여 숨졌다고 말했다.
또한 윤숙노 양(26·여)은 대연 각 호텔 교환원으로 4층 교환 실에서 근무하다 복도 문으로 갑자기 연기가 들어오고 전기 불이 꺼져 한때 질식했다가 정신을 차려 창문을 통해 붙어있던 다른 건물로 건너가 화를 면했다고 말했다.
이날 하오 1시 현재 밝혀진 사망자와 중상자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망자>
▲이현자(35·대연 각 종업원·여) ▲이강소(35) ▲최순난(22·여·대연 각 호텔 방송실 근무) ▲한상종(34·한흥물산 경리과장) ▲27세 가량 여자 ▲20세 가량 남자 ▲이광택(36·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영사) ▲35세 가량의 남자

<중상자>
◇성모병원 ▲김부화(40) ▲이종희(30·여) ▲김현태(31) ▲장현국(31) ▲표광응(29) ▲장경준(36) ▲성낙현(35) ▲김유석(31) ▲김명희(23·여) ▲문길만(23) ▲장윤호(40) ▲김세창(35) ▲박남우(22) ▲안미자(16·여) ▲김은희(19·여) ▲김동묵(27) ▲김종옥(27) ▲이범승(35) ▲김광균(43) ▲박남숙(22·여) ▲이원(26) ▲조숙현(26·여)▲20살 가량 여자 ▲송주현(36) ▲20살 가량 남자

<경상자>
◇성모병원 ▲김윤섭(31 )▲박윤한(30) ▲대도화남(28) ▲임영순(40) ▲김정욱(20·여) ▲김왕균(43) ▲최원진(20) ▲윤숙노(26·여) ▲전영신(30)

<투숙객 일본인 많은 듯>
대연 각 호텔에는 일본인투숙객도 35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날 낮 12시현재 투숙객으로 알려진 일본인은 동양면화의 무라까미씨, 일본공영의 도꾸다씨, 엔지니어 오오지마씨 등이다.

<줄 맨 총 류 탄 쏘아 구조기도>
▲구조작업=불이 호텔에 번져 창문에서 투숙객들이 계속 아래로 떨어지자 사다리 차로 구조하려했지만 6층 이상에는 미치지 못했다. 상오11시쯤 뒷면별채에 있던 남녀 17명을 사다리 차가 구출했으며 6층 창문에 매달렸던 변종구씨 등 30명을 구해냈다.
이때 군 헬리콥터 등 6대가 출동, 6층 이상의 창틀에 매어 달린 투숙객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상오 11시25분쯤 연기 속에서 구조 자를 찾아 선회하던 헬기는 건물동쪽에 간신히 접근. 창틀에 매어 달린 7명을 구출했으며 다른 창문에 매어 달린 투숙객을 로프를 내려 위기일발에서 구조하기도 했다.
경찰은 상오 11시20분쯤 호텔주변의 밑바닥에 추락 자를 위해 50여장의 매트리스를 깔았다.
상오11시35분쯤 15층 창문에 매달려 있던 한상종씨(40·한흥물산 경리과장)는 구조헬리콥터의 로프를 잡았으나 놓쳐 30m아래 땅에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주한 자전중국공사 여선형씨(60)는 24일 밤 14층에 투숙, 하오까지 생사불명이다.
하오 2시쯤 11층 창문에 걸터앉아 기진 상태에 있는 남자 1명을 구출하려고 구조대는 7층까지 사다리를 올려 총 류 탄에 갈퀴가 달린 밧줄을 매어 11층 창문을 향해 2발을 쏘아 올렸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어 헬기도 창문 50m가까이 까지 접근, 총 류 탄을 쏘았으나 빗나갔다.
불길이 11층 창문 가까이 로 번지고 있어 연기로 창문부근이 보이지 않아 자꾸 빗나가고 있는데 실패할 때마다 지켜보는 시민들은 안타까운 함성을 지르며 가슴을 죄고 있었다.
하오 2시쯤 소방대원 4명이 호텔동쪽에 붙여 지은 금강빌딩옥상으로 올라가 사다리를 호텔 창문에 걸치고 들어가 4층에 있던 남자시체 4구와 여자시체 2구 등 6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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