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또 하나의 대 중공미소…닉슨의 인도규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인·「파」전쟁의 불길은「워싱턴」정계에까지 파급, 때아닌 정치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문제의 발단은 엄정 중립을 선언했던「닉슨」행정부가 시종일관「파키스탄」의 편을 들면서 인도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심지어 인도를 침략자로 규정한데서 비롯되었다.「에드워드·케네디」를 비롯한 일부 영향력 있는 야당의원들이 즉각 들고일어나「닉슨」행정부의 편파적인 태도를 규탄했다.「케네디」는 인·「파」전쟁의 원인이「야햐·칸」군사독재정부가 동「파키스탄」인민들을 탄압, 대량 학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즉 이 때문에 9백만 이상의 피난민이 인도로 몰려들어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안을 조성했으며 동「파키스탄」인민이 학살과 굶주림에 떠는 참상을 방관하던「닉슨」정부가 이제 와서 전쟁의 책임을 인도에만 지우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역설했다.
그러자 백악관은 인도규탄의 어조를 다소 늦추는 듯하지만「파키스탄」을 지지하는 기본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뿐 아니라 이번에는 공화당원내 총무「휴·스코트」가「케네디」를 반격하여 인도·「파키스탄」전쟁의 부작용은 확대 일로에 있다.
「뉴요크·타임스」지도 논쟁에 뛰어들어「닉슨」의 엄정 중립은 실패라고 비판했다. 동지는「닉슨」행정부가「파키스탄」정부에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동「파키스탄」탄압을 사실상 도와준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인도·「파키스탄」전쟁에서만 발단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양당의 이해관계, 특히「케네디」의 감정주의,「아시아」와 인도양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의 정치를 반영하고 있는 만큼 더욱 흥미진진하다.
인도는, 말하자면「케네디」행정부가「아시아」에서 중공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나라를 성장시키는「모델·케이스」로 선정, 집중투자를 했다. 경제학자「갤브레이드」가 대사로 가서「케네디」의 꿈의 실현을 직접 지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패했다.「케네디」의 이상이 현실보다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닉슨」행정부는 처음부터「파키스탄」에 눈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이는 장차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민주당행정부가 중공과의 화해를 뒤로 미루고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기본 정책으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흐루시초프」체제의 소련은「아시아」정책에 중점을 두지 앉았다. 그러나「브레즈네프」는「아시아」 집단안보회의를 제의함으로써「아시아」문제에 대한 적극참여를 분명히 했다.
71년에 조인된 인·소 우호조약은「아시아」에 대한 소련의 진출을 구체화한 것이다.「닉슨」행정부는「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으로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공과의 화해를 모색하고있는 것이다. 비밀의 장막에 싸였던「키신저」의 첫 북경방문이「야햐·칸」「파키스탄」정부의 협조로 이루어진 사실만 보아도「닉슨」과「키신저」가「파키스탄」에 걸고있는 감정적 편견을 짐작할 수 있다.
또「유엔」에서 미국과 중공이 한 패가 되고, 소련이「프랑스」정도의 지지를 받으면서 인도 편을 드는 것도「아시아」에서 해묵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이 세력개편을 서두르고있는 강대국들의 이기주의의 일단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미국정계의 논쟁도 단순한 당파싸움이 아니라, 미국의 장기적인「아시아」 정책을 관측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가령「에드워드·케네디」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면「인도차이나」 반도의 기류는 달라질 것이고 인·「파」분쟁에 관한 한은 지금과 같은 북경·「워싱턴」공동전선은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