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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비밀접촉]盧, 김정일과 직접 核해결 모색

중앙일보

입력

나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 직전에 중국에서 북측 인사와 극비리에 만난 것은 현안인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접점을 모색하고, 향후 남북 관계의 밑그림을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다음달 제10차 남북 장관급회담까지 접촉을 미루기가 어렵다고 보고 비선(秘線)을 가동해 북한 측의 진의를 알아보면서 새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접촉은 盧정부 출범을 맞아 남북 간에 새 대화 창구를 열면서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은 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대화 채널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직전에 남북 관계자가 접촉하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접촉은 또한 羅보좌관이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의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특보의 역할을 떠맡을 것이라는 점도 예고한다.

이번 접촉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우리 측이 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하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한 대목이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그에게서 핵 문제 해결에 관한 전향적인 태도를 끌어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취임 전 여러 차례에 걸쳐 金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한 盧대통령의 의지도 담겨 있다는 풀이다.

특히 羅보좌관이 중국에서 돌아온 지난달 21일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과의 회견에서 "金위원장의 방한을 기대하지만 북측의 초청이 있으면 (盧대통령이) 방북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점은 눈길을 끈다.

우리 측이 조기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5월께로 예상되는 盧대통령의 방미 일정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金위원장의 입장을 확인해야 한.미.일 3국을 축으로 한 북한 핵 문제 관련 당사국과 북한 간의 빅딜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羅보좌관은 이와 관련해 북한의 핵 개발은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 대대적인 경제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羅보좌관은 북한의 핵 개발 포기를 전제로 에너지도 지원할 수 있다는 구상을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북측 반응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회동 직후 상황을 보면 북한은 "핵 문제는 북.미 간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서 크게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盧대통령 취임 직전 지대함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25, 26일 전후 영변의 5㎿e원자로를 재가동해 대미 협상력 제고에 나섰다.

羅보좌관의 북한 인사 접촉은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대북 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한다는 盧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羅보좌관이 전(前) 정부의 주영국대사 신분으로 북측 인사를 만난 데다가 접촉이 북측과 합의를 하는 자리가 아닌 만큼 문제삼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오영환 기자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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