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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제 22화>부산통화개혁(11)김유택<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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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예금동결 해제를 위해「긴급 금융 조치법」을 마련했다. 이 법은 부동구매력을 흡수하고 국민의 재산권에 일시적인 제한을 가하는 통화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25일 하오 3시 국회에 제출된 정부 원안은 퍽 과격한 것이었는데 국회의 반대에 부딪쳐 크게 완화돼버렸다.

<정부원안의 골자>
2·15 이후 금융기관에 예입 신고한 것과 2·14 이전의 기존예금을 구분, 2·15 이후의 구권예입분에 대해서는 ▲1천환 이하의 금액은 전액지불하고 ▲1천환 초과분 80% ▲2천 5백환 초과분 60% ▲5천환 초과분 40% ▲1만환 초과분 30% ▲2만 5천환 초과분 25% ▲5만환 초과분 20% ▲10만환 초과분 15% ▲25만환 초과분 10% ▲50만환 초과분 5%를 지불하고 ▲1백만환 초과분은 전액을 동결하는 초과누진 체감율 체제였다. 그리고 개인별로 동결된 금액 중 3분의2는 2년 기한 정기예금, 나머지 3분의 1은 3년 기한 국채예금으로 예치토록 돼 있었다.
이에 대해 국회수정안은 단계도 줄이고 체감 율도 크게 완화해서 ▲3만환 이하는 전액지불 ▲3만환 초과분 80% ▲5만환 초과분 60% ▲10만환 초과분 40% ▲25만환 초과분 20% ▲50만환 초과분은 10%를 지급하고 ▲1백만환 초과분은 전액 동결하는 것이었다.
또한 2·14 이전의 기존예금에 대해서 정부원안에는 ▲1천환 이하에는 제한을 없애고 ▲1천환을 초과하는 금액에는 일률적으로 4분의 3을 자유계정으로 하여 제한을 없애며 나머지 4분의 1은 1년기한 특별정기예금으로 묶으려고 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것도 수정, ▲10만환 이하에는 제한하지 않고 ▲10만환 초과분은 75% ▲50만환 초과분은 50% ▲1백만환 초과분은 25%를 지급하고 ▲2백만환 초과분은 전액을 동결하여 동결 액을 1년 기한 정기예금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이 같은 국회 수정 율은 정부가 당초 예상한 30억환의 부동구매력 흡수를 불가능케 하고 나아가서 통화조치의 성과를 크게 삭감할 우려가 있었지만, 경제적 진공상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별수 없이 국회결정에 따랐다.
그 당시는 수도가 서울로 옮기기 전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서울에 있었다.
이 대통령은 처음 정부원안을 결재했다가 나중에는 부산으로 백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모두 국회요청대로 바꾸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백 장관과 나는 이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사표도 내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한 채 상경, 경무대 국무회의 석상에서 주장을 관철시켰다.
백 장관이 계속 끈덕지게 고집하자 이 대통령은 마지못해『재무장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법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27일 상오 0시 50분. 예금 지불제한 체감 율을 놓고 정부와 국회가 대결한 1주일 동안 백 장관과 나를 비롯한 한국은행 간부진들은 거의 한잠 자지 못한 채 회합과 설명을 거듭했었다.
정부안이 국회에서 그처럼 대패질을 당한 것은 반드시 국민재산권을 크게 침해하는 내용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외자유당(여당성) 과 원내자유당(야당성) 의 정치적인「헤게모니」싸움이 치열한 시기였고, 이 대통령의 막중한 신임과 여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던 백두진 국무총리 겸 재무장관에 대한 야당의 정치적 공격이라는 데 보다 큰 이유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강한 야당 세에 여당이 눌린 것이었다. 대통령비서관인 임철호씨 같은 이도「백 재개」에 반발을 보이기도 했었다. 법안을 놓고 국회질의가 한창이던 때 어느 야당의원은『5·26 파동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정치파동이었고 2·15 통화개혁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경제파동』이라고 몰아붙였다. 다른 야당의원은『지불제한을 하지 않으면 1백분의1 선에 있는 물가가 급등,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를 것이고, 제한을 하면 불공평한 지불로 인해 관료자금이 생겨날 것이니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재형 상공장관은 야당의원으로부터『통화조치가 위헌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계수 손목을 잡지 못하는 것이 동양의 도덕이지만 계수가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하면 안 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번 조치는 사경에 이른 국민경제를 구하기 위해 헌법을 돌볼 사이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 의원은 이 장관 말을 되받아『인의에도 권도가 있다는 맹자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나 얕은 우물에서 끌어내려다가 더 깊은 곳에 집어넣지는 말라』고 하기도 했다.『2월 25일 이후에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백 장관의 말이 꼬리가 잡혀 긴급 금융 조치 법이 발표되자 시중 여론은『백 재정에 속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부산 국제시장의 어느 장인은『무제한 지불할 것이면 구권에「스탬프」로 인하 액만 찍어 사용하면 될 것이 아니냐』했고, 상공회의소 모 과장은『발표된 조문을 숙독했다면 지불제한을 미리 감독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어떤 남포동 식료품상인은『뒷구멍으로 사바사바해서 빠져나가는 따위의 지불제한이 아닌 공평무사한 제한이 가능하다면 화폐개혁은 성공』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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