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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교육의 실험적 부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7일 국회문공위의 문교부 국정감사에서 문 문교는 전국에서 10∼20개 국민학교를 선정, 내년부터 한자교육의 부활을 실험적으로 실시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다. 문 문교의 이같은 언명은 지난 69년 당국이 한글전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별안간 단행했던 한자교육 전폐조치 이후 근2년만의 이성회복으로서 환영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본관이 누누이 강조한바와 같이 한글전용과 한자교육의 폐지문제는 이론상 전혀 별개의 것이요, 오늘날 우리 어문정책상 빚어지고 있는 혼란은 이 양자를 혼동함으로써 빚어진 것임을 다시 한번 똑바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편에서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상의 편리를 돕고 문자의 일용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의 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전용하자는데 대해 조금도 반대를 하려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모든 공용문서의 한글 표기화를 찬성할 뿐 아니라, 되도록 많은 한글타자기와 한글 전산기 등을 많이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무능률이 향상되기를 바라며, 또 미구에는 신문제작도 순 한글로 가능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글활용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 모든 편리와 이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각급 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주장하는 적극적인 이유는 모든 언어문자가 갖는 문화의 전승 및 창조적 기능을 함께 중시하기 때문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언어문자는 현재의 국민생활에서 의사소통수단으로서의 일용적 효용성을 가짐과 함께 그것을 매개로 하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사상·문화를 창조해야할 문화적 기능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극렬 한글전용논자들은 편벽하게도 언어가 갖는 이렇듯 중요한 문화전승 기능과 그 창조적 기능을 의식적으로 외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는바와 같은 기막힌 문화의 단절현상을 빚어내고 만 것이다.
한나라의 지적 중견 층이라 할 고교·대학생들조차가 아버지 서재에 있는 장서 한권을 제대로 독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눈익은 고적·사찰 등에 걸린 현판 한장 제대로 못 읽는 것이 오히려 일반화한 오늘의 사태를 두고서 그것을 정상적인 문화·교육정책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것은 분명코 저들 극렬 한글전용논자들의 아나크로니즘적 사이비 애국론에 말려든 역대위정자의 일대망발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한자교육의 전폐이후 각급 학교 학생들의 사고력과 독서력에는 현저한 결함이 노정되고 있다는 사실이 도처에서의 여러 실증적 연구보고를 통해 밝혀지고 있거니와, 국민학교 과정부터 1천3백자정도의 상용한자교육이 어린이들의 학습에 결코 어려운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님은 물론, 도리어 그들의 사고능력발달과 학습능률증진에 플러스를 준다는 사실은 인국 일본에서의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하물며 영·독·불어 등 전통문화하고는 무연한 외국어까지를 필수선택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우리의 각급 학교 교과과정에서 아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별안간 전폐케 했던 한자교육의 부활을 이제 와서도 주저할 이유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 민 문교가 한정된 몇몇 학교에서의 실험적 한자교육부활을 언급한 조심성에 대해서도 그 미급함에 있어 여전히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문교부로서는 이미 교과서의 인쇄가 완료됐다하더라도 의당 각급 학교 교과과정에서 가르칠 상용교육한자의 수 및 종류를 조속히 결정, 통고해줌으로써 새 학년부터는 모든 학교가 교사들의 책임 하에 보충된 한자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할 것이다. 충분한 합리성이 있고, 대다수지식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있는 어문정책의 실시를 제한적으로 천연해야할 이유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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