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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는 식목일 … 구미는 재선충과의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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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 4일 오전 경북 구미시 선산읍 북산2리 마을 뒷산에서 감시반원들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잘라내고 있다.조문규 기자

4일 오전 경북 구미시 선산읍 북산2리 뒷산. 야산 입구에 들어서자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산속 곳곳엔 베어낸 소나무를 덮은 초록색 비닐 더미 100여 개가 늘어서 있다. 감염된 소나무는 1m 길이로 잘라 차곡차곡 쌓는다. 그 위에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 하늘소의 애벌레를 죽이기 위해 농약을 뿌리고 비닐을 덮는다. 감시반장 이수균(39)씨는 "여기가 뚫리면 전국으로 재선충이 퍼질 수 있다"며 "재선충 북상을 막기 위해 반원 모두 감염된 소나무 찾기에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국내 최초로 발견된 재선충이 부산, 경남.북 등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서서히 북상하고 있다. 재선충에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여서 '소나무 에이즈'라 불린다. 이에 따라 요즘 경북 구미시는 식목일도 잊은 채 '재선충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재선충 감염지 중 최북단인 이곳에서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비상이 걸린 것이다.

구미에서 활동 중인 방제인력은 감시반원 23명, 방제작업반원 150명 등 모두 173명이다. 벌목지역 밖 반경 2㎞에 설정된 '재선충 저지선'안을 돌며 일일이 소나무를 점검한다. 잎이 마른 소나무가 보이면 즉시 나무에 붉은 띠를 묶고 손도끼로 찍어 시료를 채취한다. 구미시는 재선충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있으면 주변 5배의 면적에 있는 소나무를 모두 베어낸다. 산림청 관계자는 "재선충 치료.예방 약제나 천적 등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일단 감염되면 모두 베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전국적으로 4961㏊에 57만3000여 그루가 감염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미 외에도 부산.포항 등의 발생지역에서도 방제작업반과 감시반이 투입돼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현재 전국의 감염된 소나무 가운데 85%를 베어냈다"며 "재선충이 태백산맥 등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미.포항지역은 특별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 재선충=소나무에 기생하는 길이 0.6~1㎜인 선 모양의 벌레. 감염되면 수분과 영양분의 이동 통로가 막혀 1년 안에 고사한다. 솔잎을 갉아먹는 솔수염하늘소에 붙어 다른 소나무로 전파된다. 일본.대만 등은 재선충 때문에 소나무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

구미=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항공방제, 때 놓친 까닭은 …"환경단체가 막았다"

2000년 들어 소나무 재선충이 본격적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였지만 환경단체의 반대로 비행기에서 약제를 감염 지역에 제때 뿌리지 못해 피해를 많이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림청 관계자는 4일 "항공 방제를 제대로 했으면 재선충 확산을 상당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989년부터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을 죽이기 위해 매개충이 활동하는 5~7월 헥타르(ha=3000평) 당 농약 0.3ℓ와 물 30ℓ를 섞어 비행기에서 재선충 발생 지역과 외곽 지역에 뿌렸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부산 지역 환경단체들은 항공 방제시 사용하는 약제가 생태계에 피해를 준다며 항공 방제 중지를 요청했다. 이 결과 2000년 당초 6회로 예정했던 부산 지역에 대한 항공 방제는 1회에 그쳤다. 이 곳에선 2001년에도 6회로 계획했던 항공 방제가 3회만 시행됐다. 산림청은 이 결과 부산 북쪽으로 재선충이 확산해 감염된 전체 면적은 99년 365ha(110만평)에서 2000년 1677ha(503만평), 2001년 2575ha(773만평) 등으로 늘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당시 항공 방제 효과가 없다고 판단된 데다 다른 환경 오염 피해가 더 컸기 때문에 항공 방제를 줄이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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