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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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는 29일부터 오는 11월18일까지 21일간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일반 국공감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새해 예산안심의에 앞서 실시되는 이 국정감사는 국회가 행정 각 부처의 예산집행상황을 감사함으로써 각부처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그 비리나 과오를 지적하여 앞으로의 시정책을 강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기능가운데도 가장 중요한 것이요, 국회가 행정부를 실제로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국정감사실시에 앞서 여야는 각각감사지침을 마련해 가지고 감사의 중점적인 방향을 지시했다고 하는데, 특히 야당인 신민당의 지침은 주목을 요한다.
보도에 의하면 신민당은 이번 국감에서 ①예산 유용, 각종공사계약의 특혜를 비롯한 부정부패문제 ②부실기업특혜융자의 배후 ③선거의 예산탕진 및 행정권관여 ④국방기구축소문제 등을 추궁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야당은 원내·외를 통해 정부의 부정·부패문제나 부실기업문제, 정부의 선거관여 문제 등을 들어 일련의 정치공세를 펴왔었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에 관해서도 야당은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명백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여당은 야당의 주장이 허무 맹랑한 것이라 역습할 수 있었고, 또 국민대중은 국정의 방향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과연 그 진실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서 살아왔다.
국정감사야말로 야당이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부정·부패, 부실기업, 선거관여 등을 합법적으로 그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의 부정·부패, 부실기업, 선거관여 등은 여당의 입장으로 보아서도 방임·묵과해둘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삼권분립제하 국회의원은 그 당 소속 여하를 불문하고 행정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촉구해 나갈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사에 나서는 국회의원은 여당이 그 야당이기 이전에, 바로 『행정부를 견제해야할 입법부의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정보를 널리 수집하고, 정확한 자료제출을 요구해 나감으로써 행정부가 저지른 비리나 과오를 예리하게 파헤쳐 나가야 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국정감사를 받는 정부의 각 부처는 우선 후대와 호화로운 향연으로 감사하러 나온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 놓고, 야당의 추궁으로 잘못된 점이 드러나면, 이번에는 여당을 시켜서 정치적으로 무마하는 등 얼렁뚱땅해서 국정감사를 넘겨버린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이처럼 국정감사가 야당의원에게는 행정부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또 여당의원에게는 그 잘못을 두둔하고 야당의원을 무마함으로써, 행정부를 괴롭혀 돈벌이나 하고 이익이나 나눠 가지는 수단으로 타락한다고 하면, 그런 국정감사는 오히려 하지 않음만도 못하다.
지난 10년을 두고 국정감사는 한낱 형식적인 것으로서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감사라는 말 대신 「국정감상」이란 말마저 생겨났다. 이것은 감사가 지극히 소홀하여 문제소재의 핵심을 파헤치지 못했다는 뜻이요, 국정감사가 국정개선에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감사를 나가는 국회의원은 어째서 국정감사마저 국민의 불신의 대상이 되었던가, 이점을 깊이 반성하고 감사키로 되어있는 부처의 업무집행상황을 면밀히 조사연구하고, 일절 정실을 배격하고 공평무사한 입장에서 체계적인 감사를 실시해나감으로써 국민의 기대에 부응토록 해야한다.
우리 나라가 내우외환에 부닥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력을 결집하여 난관을 극복하려면 정부부터 청렴하고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되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감사가 깨끗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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