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예를 들면 이렇게 쓰는 것이다.
『밤은 별들이 빛나고
저 멀리 천체는 프르름에 떨고 있다』
밤바람이 하늘을 휘저으며
슬픈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슬픈 시를 나는 써야지
어느 여인을 나는 사랑했었고
또한 그 여인도
나를 가끔 사랑했었다.
오늘과 같은 밤에
나는 여인을 팔에 안았었지
무한한 하늘 아래서
나는 미친 듯이 여인의 입술을 빨았었지.
여인은 나를 사랑했고
또한 나도 가끔 여인을 사랑했었다.
여인의 커다란 눈이나를 뚫을 듯 핥을 때
나는 여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가장 슬픈 시를 나는 오늘밤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이 없다고 생각해야지
여인을 잃었다고 느껴야겠다.
넓은 소리를 들어야겠다.
여인이 없으면 더 넓어지는 그 밤의 소리를
그래서 시는 나의 영혼에 곱게 내려 앉겠지
풀밭에 떨어지는 그 고운 이슬처럼
여인을 내 사랑이 감당 못하더라도
나는 도시 흥미 없는 일
밤은 저렇게 별이 총총히 빛나는데
여인은 나하고 같이 있지 않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
멀리서 누가 노래를 부른다.
저 멀리서
그래서 영혼은
여신을 잃었다고 사뭇 슬퍼만 지는가보다.
여이니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듯
내 시선은 사뭇 여인을 찾는다.
내 마음도 여인을 찾는다.
그러나 여인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네.
바로 그대와 똑 같은 밤이
그때의 꼭 같은 나무들은
하얗게 비쳐 주는데
우리 두 사람은 그때의 그 사람들이 아니로세.
단연코 지금 나는
여인은 사랑하지 않지마는
그 어느 때 그 얼마나 여인을 뜨겁게 사랑했던가?
나의 목소리는 바람을 하염없이 부르고 있다.
빨리 여인의 귀를 붙잡아 놓으라고-
이제는 딴 사나이의 품에 안겨 있을 여인
나의「키스」를 받을 때처럼 황홀한
경지를 헤매고 있을 여인
여인의 목소리
여인의 해맑은 육체
여인의 무한한 눈.
단연코 여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어쩌면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사랑은 그렇게도 짧게 흘러갔건만
망각은 왜 이다지도 더디 가는가?
오늘과 같은 밤에는
언제나 여인을 몸에 안고 있었지
해서 내 영혼은 여인을 잃고 나서부터
언제나 슬픔에 잠겨 있는가 보다.
여인이 뿌리고 간 그 쓰라림이
부디 마지막이 되기를l
여인에게 쓰고 있는 이 시 가
부디 영원한 마지막이 되기를-
※좌경전 초기시집『황혼』에 실려있음. <장선영 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