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한국인 2세 자매 뱃사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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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이공=신상갑 특파원】「사이공」의 가장 화려한 거리「뚜도」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프랑스」풍의「머제스틱·호텔」에서 길을 건너 조금 가면 유명한 수상 중국요리점「미깡」이 있다.
여기서 약 1백「미터」남쪽으로 수십 척의 놀잇배가 옹기종기 강 안에 선 복을 기댄 채 졸고 있다.
주로 20세 안팎의 남녀 뱃사공들이 호기심으로 뱃전을 기웃거리는 외국손님을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신경전을 피운다.
이들 여자 뱃사공 가운데는 손님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웬·티·냐」,「웬·티·녜」 라는 처녀자매가 유난히 한국 손님의 눈길을 끈다.
언니는 17세, 동생은 15세, 한국 2세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한국인 아버지의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월남인 어머니「찬·리·탐」한테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냐」양이 4세 때 한국에 다녀오겠다면서 떠나 버린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으나 꿈에라도 아버지를 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다 했다.
재 월 한국인 교민회에 기자가 수소문해 봤으나 아마 그들의 아버지인 그 한국인이 2차 대전 당시 군국주의 일본인에 의해「베트남」으로 징용 왔다 눌러 앉은 사람 같다는 것밖에는 다른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냐」양의 월남인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먼 곳에 행상을 떠났기 때문에 기자는 그에게서 한국인 남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1만5천t급 큰배가 자유로이 드나들고 우리 주 월 군 백구부대 807함 등이 유유히 떠 있는 「사이공」의 명 항을 안은「사이공」강은 길이가 60「마일」이나 된다.
숙모와 함께 「사이공」교외에 살고 있는「냐」자매는 국민학교를 나왔으며 일수는 평균 1∼2천「피애스터」(실세는 한국 돈과 비슷), 월남인의 평균 수익에 비하면 그리 적은 편은 아니다.
뱃삯은 1시간에 5백「피애스터」,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는 말에「냐」양은 얼굴을 붉히면서「꽁·비엣」(모른다는 월남 말)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한국인인 기자를 반갑게 맞았던 그들 자매는 헤어질 때 어느덧 눈물이 맺히면서 부둣가에는 날치기가 많으니 손목시계를 조심하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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