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독, 스파이 금지 협약 맺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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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이 국가안보국(NSA)의 전방위 도청 파문으로 내우외환에 빠졌다. 도·감청 대상국으로 지목된 독일과 ‘스파이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어가며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미 정부 내에선 ‘도청이 누구 탓이냐’를 놓고 공방전이 벌어졌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미국을 방문 중인 독일 대표단이 백악관 관계자들과 양국이 서로 감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기로 합의했다고 3일 보도했다.

FAZ는 독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내년 초 협약이 체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양국 신뢰 회복을 위해 지난달 30일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도 양국이 산업 스파이 행위를 중단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슈피겔은 또 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내용이 사실임을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이 시인했다고 전했다. 알렉산더가 다이앤 페인스타인(민주당) 상원 정보위원장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메르켈의 전화통화를 엿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더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는 동석자들의 진술을 인용했다.

 유엔도 개인의 정보 보호를 위해 과도한 통신 감청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총회 표결에 부칠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NSA 감청의 주요 피해국으로 거론된 독일과 브라질이 결의안 초안을 작성했다. 결의안은 “외국에 대한 도청 등 통신 감청이 초래하는 인권침해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각국이 이를 막기 위해 관련 입법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미국 내에선 도청 사태의 책임을 두고 국무부와 NSA 간 집안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달 말 영국 런던의 한 행사에서 “일부 정보기관의 도를 넘은 사례들에 대해선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알렉산더 NSA 국장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해외 첩보활동은 대부분 외국 지도자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외교관들의 요청 때문에 발생한다”고 발언했다.

NSA 고위 관료들은 ‘백악관이 국내외의 비난들로부터 정보기관을 보호하기는커녕 이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자신들의 기밀 첩보 프로그램을 까발리기까지 하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문제는 스노든의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 도·감청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필립 크롤리 전 국무부 대변인은 “얼마나 더 많은 폭로가 나올지, 그 내용이 무엇일지 모르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공보 전략을 세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FP에 말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미 외교전문 공개 사태 당시 국무부의 대응을 주도했던 그는 “당시엔 몇 달간 위키리크스를 검색해 내용을 파악하고 대책을 내놨지만 지금은 사태가 끝나가는 건지 이제 시작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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