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황금산업 … 모바일 맞춤형 서비스까지 속속 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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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20면

1 서울 서초동 비트컴퓨터 연구개발센터에 있는 원격진료 장비. 환자의 혈압·심박수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의료진에 실시간 전송된다. 최정동 기자 2 휴대용 혈당측정기와 전용 앱이 깔린 스마트폰. 3 KT의 건강관리시스템 Q케어. [사진 KT]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 내 회의실. 헬스케어 연구개발그룹 이정숙 매니저가 작은 바늘이 달린 기기로 기자의 검지손가락 끝을 살짝 찌르자 피 한 방울이 나왔다. 이를 혈당측정기와 연결된 작은 테스트 용지 위에 떨어뜨리자 액정화면에 기자의 혈당 수치(95mg/dL)가 떴다.

원격진료 입법 예고로 본 헬스케어 산업

측정기에서 테스트 용지를 빼내자 동시에 전용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깔린 스마트폰 화면에도 혈당 수치(95mg/dL)가 그대로 표시됐다. 이처럼 혈당치를 정기적으로 측정해 전송하면 앱과 전용 사이트에 데이터가 축적·분석되면서 의료기관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건강 상담에 활용한다.

이 회사가 경기도·질병관리본부와 함께 개발해 광명·안산보건소에서 시범 서비스 중인 IT 기반의 혈당·혈압관리 시스템 ‘Q-케어(care)’다. 이정숙 매니저는 “이전에는 데이터를 보낼 때 ‘게이트웨이’란 중간 전송 장비가 있어야 했는데 이 시스템은 측정기에서 스마트폰과 서버로 직접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헬스케어 산업은 생체정보 측정기기에서 네트워크·병원시스템이나 의료정보·의료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따라서 의료기관은 물론 통신사나 기기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서로 손잡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헬스케어 산업의 지향점은 모바일(mobile)·언제 어디서나(ubiquitous)·개인맞춤형(customized) 등의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개인 특화 시스템 개발이 관건
떠오르는 시장을 잡기 위한 관련 업체의 움직임은 분주하지만 아직 온도 차가 있다. 중소 기기 제조업체는 기대감을 드러내며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반면, 통신·전자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은 물밑에서 움직인다. 의사협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탓이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수준의 원격진료는 현 기술수준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손목시계형 건강측정기와 전용 앱이 깔린 스마트폰. 운동·열량 정보가 실시간 전송된다.

대형 통신사에 다니는 회사원 윤모(48·서울 방배동)씨는 ‘헬스 트래커’라는 손목시계형 건강측정기를 늘 차고 다닌다. 측정기는 윤씨의 운동량과 섭취·소모 열량 등을 전용 앱이 깔린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한다. 윤씨의 회사에서 시범적으로 개발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건강관리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31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30분 현재까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윤씨는 총 6.84km를 걸었고, 소모 열량은 253kcal다. 식사 종류와 운동별 섭취·소모 열량도 모두 기록된다. 이런 정보는 개인별로 입력돼 일정 기간 단위로 관리할 수 있다. 윤씨의 회사는 이 시스템을 조만간 상용화할 예정이다.

현재 이용할 수 있는 U-헬스케어 서비스는 ‘시범형’이 대부분이다. 경북 영양군과 같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기업들과 손잡고 제공하는 시범 원격진료와 건강관리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개인별 맞춤 관리가 핵심이다. 서울 중구보건소는 고혈압과 당뇨 위험이 있는 구민 중에서 기준치를 넘어선 주민들을 선정해 집에서 혈압혈당을 측정해 전송할 수 있는 장비를 무상으로 빌려준다. 이 장비를 통해 지속적으로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상담한다. 중구보건소 이승희 건강관리사업 담당은 “올해 초부터 구민 30명씩 선정해 3개월 단위로 관리·상담을 실시하는데 반응이 꽤 좋다”고 말했다.

개인맞춤형 서비스는 병원에서도 이뤄진다. 분당 서울대병원은 최근 SK텔레콤과 손잡고 ‘스마트병원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자나 보호자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접수부터 진료·결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면 근거리통신망을 통해 전용 스마트폰 앱이 자동으로 구동되고 각종 정보가 제공되는 식이다. 분당 서울대병원 의료정보팀 조은영 과장은 “모든 사람이 보다 편리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연세대의료원과 손잡고 ‘후(HooH)헬스케어’를 설립해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 개발과 e-헬스 상용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원격진료 해외 시장을 잡아라
의료법의 제한으로 국내에서 원격진료를 비롯한 U-헬스케어 시장 개척이 여의치 않자 헬스케어 업체들은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비트컴퓨터는 순천향대 U-헬스케어 연구소와 함께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국립 코사막병원과 인근 보건소에 원격진료·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개인과 의료기관형 두 분야로 나뉘어 추진된다. 이 회사 U-헬스케어사업부 진현석 사업팀장은 “내년 6월에 시스템 구축이 마무리된다”며 “코사막병원과 국내 순천향병원 간의 원격 협진시스템도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앞서 2006년 우크라이나에도 병원 간 원격진료시스템도 구축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U-헬스케어 시장은 2007년 1057억 달러에서 2011년 1893억 달러, 올해는 2539억 달러로 연 평균 15.7% 증가하고 있다. 원격진료 진단기기를 만드는 인포피아는 최근 태국의 U-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567억원)의 93%가 해외에서 나온다. 인포피아 김유석 헬스케어 사업팀장은 “지금까지 국내 수요가 없어 해외 진출에만 주력하고 있지만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국내 시장에도 뛰어들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
 
책임소재 애매한 데이터 전송·판독
한국은 IT 강국이지만 원격진료를 포함한 U-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하려면 갈 길이 멀다. 하드웨어 쪽은 해외 선진국 못지 않지만 소프트웨어·운영 시스템은 뒤져 있는 편이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관련 기기의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우리의 U-헬스 산업 수준을 분야별로 미국(100기준)의 80~90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독일에서 한국으로 초기 U-헬스 시스템을 배우러 왔는데 지금은 우리가 유럽에 가서 기술을 배워와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황보택근 가천대 IT융합 헬스케어기기 연구센터장은 “IT융합 의료기기와 진단 분야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실전 사례에 적용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일정 수준의 기술·경험은 축적했지만 그래도 실전 데이터 분석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소재를 가리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데이터 측정과 전송·판독 어느 과정에서의 잘못인지 알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업 모델로서 수익 창출 구조도 아직 체계화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최근 증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헬스케어 관련 종목에 대한 투자도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기달 신한투자금융 애널리스트는 “어떤 사업 모델을 갖고 있는지, 실제로 매출이 일어나는지를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보 센터장은 “헬스케어 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인 게 분명한 만큼 원격진료 허용 여부를 떠나 하드웨어뿐 아니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과 운영 노하우 축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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