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쟁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필요한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13%(현재 9%)로 올려야 한다”고 제시하면서 연금보험료 인상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놓고 “연금기금 소진을 막고 현 세대와 후세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기금 규모만 키우는 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 어렵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대로 가면 연금 바닥나고 세대갈등 커진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기에 앞서, 인상 반대 이유부터 살펴보자. 기초연금이 모든 복지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가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은 달성하지도 못하고 벌집만 쑤셔 놓은 꼴이 될 거라는 게 대표적인 반대이유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반대이유로 자주 등장한다.

 모자라는 연금 지출액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재정방식, 구체적으로 당해 연도에 필요한 지출액을 당해 연도에 모두 조달하는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둘 경우 보험료 인상이 시급하지 않다는 주장도 자주 제기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과방식으로 전환했던 상당수 연금 선진국들이 인구 고령화와 저성장으로 혼쭐이 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 역시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보험료 인상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인상 시기를 늦추자는 주장도 많다. 국민연금 수지적자가 가시화되는 시점부터 보험료를 올리면 될 터인데, 왜 보험료 인상을 서둘러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느냐는 것이다.

 그럼 왜 보험료 인상이 시급한지 살펴보자. 3차 국민연금재정계산에 따르면 2043년부터 수지적자가 발생해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2044년부터 2060년 사이 연 150조원 이상이 연금급여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2060년 이후에는 한술 더 떠 연금지급을 위해 연 200조원 이상이 필요해진다. 기금이 소진된 2060년 이후에 연금을 지급하려면 현재 9%인 보험료가 13%포인트 인상된 22% 이상이 돼야 제도가 작동된다. 물론 극단적인 시나리오다. 보험료를 전혀 올리지 않다가 기금이 소진된 해에 소요재원 모두를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시나리오하의 보험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보험료로 조달하든 세금으로 조달하든,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만큼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려주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세대 간 형평성 관점에서도 보험료 인상이 시급하다. 상당 기간 60∼70%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는 베이비붐 세대는 보험료 3%로 시작한 세대다. 현재 9%를 부담하는 이들 760만 명이 조만간 노동시장을 떠난다. 보험료 인상시기가 늦어지면 이들 세대는 영원히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세대로 굳어진다. 대신 40% 소득대체율을 적용받을 후(後)세대에게는 15% 이상의 보험료를 부담시켜야 한다. 세대 간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단적인 사례다. 1980년대 말 90%에 근접했던 일본의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율이 60% 이하로 떨어졌다. 젊은 층 납부율은 35%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후세대는 고령화로 인해 급증할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도 책임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1% 이하로 하락하고 노인인구의 비중이 40%인 사회에서 말이다. 우리는 보험료 4%포인트 인상도 추진하지 못하면서 후세대는 13%포인트(그것이 보험료이든 또는 세금이든)를 추가로 부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어느 정도는 지속가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나서 후세대에게 따라오라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정도다.

 빨리 대처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미리 겁부터 먹을 게 아니라 보험료 인상이 시급한 이유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무조건 쌓기보다 안정적 재생산 기반 만들어야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연금에 대한 대단한 착각이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 위기에 처해 있고, 연금보험료를 인상해 기금 규모를 늘리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은 국민연금 재정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사회적 지속성이다.

 왜, 어떤 의미에서 연금재정 안정에 기금이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인가. 국민연금은 각자 보험료를 쌓아 투자수익에 따라 급여를 받는 개인연금이 아니다.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한 공적 사회보장제도다. 즉, 앞 세대가 쌓은 경제적 기반 위에서, 더 나은 생산력 성과를 누리는 뒤 세대가 앞 세대를 집단적으로 부양하는 제도다.

 공적연금제도는 근로세대가 내는 연금보험료를 부모세대 노후보장에 투입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규모로 연·기금을 쌓아놓는 예외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기금이 보유한 주식, 채권, 부동산 자산을 팔아 연금급여를 조달하는 원천은 결국 그 사회에서 창출되는 부, 즉 근로세대다. 문제는 고령화 국면에서의 연·기금 자산 대량매각은 자산가치 하락을 가져오며, 자산가치는 뒤 세대의 실질구매력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2040년대에 화폐가치로 32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쌓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그만큼의 실질가치를 유지할지는 불분명하다. 연금기금을 무조건 많이 쌓는 것이 연금재정의 장기적 안정성을 담보하는 방법은 아니다.

 결국 국민연금제도의 재정 안정성은 기금 규모보다 향후에 안정적으로 보험료나 조세의 납부를 할 수 있는 세대의 재생산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 경제성장률, 출산율, 노동소득 분배율, 경제활동 참여율, 보험료 납부율 등 경제·인구·제도의 여러 요소가 안정될 때 연금제도는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공적연금기금 조성에 적정 규모를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같은 대규모 공적연금기금 적립은 드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기금 규모가 현 상태에서도 31.2%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지금 국면에서 연금에 필요한 것은 사회적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해법을 찾는 것이다. 출산율·고용률 제고, 제도에 대한 신뢰 등 연금제도 지속성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시민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고, 적정 수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연금제도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해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 제도 지속성에 더 근본적이다. 나는 보험료 인상을 통해 연·기금에 끌어들일 사회적 자원이 있다면 한국사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복지 확대에 투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질을 높여 공적연금 기반을 강화하지 않고 보험료 인상에만 박차를 가하는 것은 자식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기준급여액이 무려 3분의 1 삭감된 결과 2040년에 예상되는 연금급여 평균 소득대체율은 23% 수준이다. 200만원 소득자가 받을 연금액이 45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低)연금 문제의 개선 없이 무조건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혜택과 부담의 균형 면에서 설득력이 없다. 국민연금의 보장기능이 취약한 가운데 보험료 인상을 운운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제 공적연금 정책은 연금보험료에만 의지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