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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파월 6주년|한국 이미지 심어놓고 조용한 철군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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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이공=신상갑 특파원】국군이 파월 된지 6년. 9월25일은 주월 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되지 6주년을 맞는 날이다. 65년에 들어서면서 악화일로에 놓인 인도반도의 불길을 잡기 위해 한국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월남 정글에 뛰어들었다. 사상 첫 해외원정군으로서 출사를 앞두고 찬·반의 여론이 엇갈렸지만 『월남전선의 공산위협이 곧 한국에 대한 위협이다』는 판단과 6·25때 우리를 도와준 우방에 대한 페이·오프(빛 갚음)로 파병의 결단이 내려졌다. 그해 10월20일 태극기가 주월 군사령부기와 함께 사이공 하늘에 오르고 비둘기부대(공병단) 백구부대(해군) 청룡부대(해병) 맹호, 그리고 백마의 순으로 월남에 도착, 주월군의 규모는 미군 다음으로 큰 규모인 5만여 명의 대병력으로 불었다. 전투에서 연승을 거듭하여 우방군으로부터 베트콩 잡는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주월 군은 남국의 태창이 이글거리는 정글과 늪을 헤치면서 따이한의 열을 심어 국위를 떨쳤다.
같은 아시아 지역이고 문화유산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월남국민의 영합을 쉽게 얻어냈던 한국군은 대민 심리전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다.
한국군 지역의 평정사업이 파월 초기의 30%에서 90%를 넘어 월남정부로부터 유독 한국군에 대해서만 철수연기를 요청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 밑바닥엔 주월국군의 피와 땀이 배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월남전선을 싸고도는 오늘의 국제기류는 예상할 수 없이 변해버렸다. 파리 평화회담은 설전의 장소로 바뀌었고 월남전의 주역이던 미국의 퇴조와 「비 미국화=월남화」정책의 가속화, 그리고 미·중공 화해 무드 속에 월남전의 열기는 사그라지고 있는 판이다. 승리도 패배도 없는 엉거주춤한 종전기운 속에 미군은 일방적인 철군일정에 따라 병력을 거두고 있으며 태국군·호주군 등도 짐을 꾸리고 있다.
이 같은 월남전의 새 양상에 따라 파병 6년만에 주월군도 회군을 준비하고 있다. 금년 12월부터 청룡부대가 베1착으로 철수를 개시할 예정이며 72년6월까지는 1차적으로 십자성부대 일부를 포함, 약1만명 규모가 돌아올 참이다.
철군개시와 함께 맞게되는 파월 6주를 맞아 성급한 손익계산은 금물이지만 한국군은 첫 원정군으로서 6·25에 대한 보답으로 국제도의 의존 중, 반공이념의 실천으로 국제사회에 뚜렷한 한국 이미지를 심었고 자유세계에서 한국의 국제지위를 높여 아시아 외교의 주역을 맡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파월 연인원이 약25만명에 이르러 공산주의를 모르는 20대 청년들에게 살아 있는 반공교육과 실전경험을 쌓는 기회를 제공했다.
6·25동이가 의젓한 월남전의 용사로 궁지를 갖게 됐을 뿐 아니라 풍부한 탄약과 신병기로 사격과 무기 조작술을 익혀 값진 전투경험을 얻었음은 6·25이후 실전경험이 있는 세대들이 전투일선에서 물러나고 있음에 비추어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방위에 기여하게 됐고 월남전선이 한국방위와 직결됐음을 증명한 것이다.
국군은 파월 이래 9월1일까지 적 사살 3만6천8백42명, 포로 4천8백86명, 귀순 2천4백22명, 개인화기 1만7천6백11정, 공용화기 1천5백37정의 전과를 거두었다. 아군피해는 전사 3천3백32명, 부상 7천4백88명.
철군을 앞둔 최근의 월남전 살펴보면 적은 아군의 우세한 화력과 계속적인 선제공격에 심한 피해를 받아 전투력을 크게 상실했으며 심리적으로도 전의를 잃고 있다. 적은 주로 2, 3명으로 구성된 새퍼(SAPPER)를 동원, 기습파괴를 시도하고 있는 정도다.
파병보다 철군이 어렵다는 얘기가 요즘 사이공 정가에 들고 있다. 파병의 결심을 내려 싸우는 것도 어렵지만 6년 동안 쌓아올린 피어린 공든 탑을 고스란히 남기고 귀국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트콩의 교묘한 한·월 이간책과 월남과격학생들의 데모, 일부 노동자들의 부령불만으로 따이한의 좋은 이미지는 이따금씩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파월 여파로 기술자와 용역을 보내어 지난 6년 동안 큰 경기를 누렸고 해외송금 등으로 우리 경제에 다소나마 활력을 부어 넣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주월군의 잉여장비의 인수 등 국군장비 현대화에도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수적인 알파 효과를 질시한 나머지 우리의 파월 명분과 대의를 흐리게 할 수는 없다. 『월남은 이제 종쳤다』란 말이 있다.
그러나 3천여명의 꽃다운 청춘이진 월남 정글에 따이한이 타종한 십자군의 종소리는 영원히 남아야 한다는 것이 철군을 준비하는 모든 주월국군의 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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