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는데 「따따닥」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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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게 꿈만 같읍니다』-무장공비들이 점거했던 공포의 마을을 2시간만에 기적적으로 탈출해 나온 김영순씨(33)는 살아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하오 2시쯤 들에 나갔던 주민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느닷없이 「따따닥」하는 AK소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날 아침부터 이웃마을에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에 떨고 있던 주민들은 『아이구』 소리를 지르며 뒷산으로 뛰어올랐다.
때마침 이날 아버지 생일을 차려드리기 위해 특별휴가를 얻어왔던 양홍규씨(36·경찰전문학교 근무)는 마당에 앉아있던 아버지 손목을 끌고 방안으로 몸을 피하려는 순간, 『문 열어라』고 외치며 들이닥친 무장공비가 「드르륵」 갈긴 총탄에 머리를 맞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양씨의 아버지 양희옥씨(76)는 아들의 시체를 부여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지만 뒤따라 들어간 예비군들에게 업혀 아들의 생사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뒷산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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