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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공연예술 센터 개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존·F·케네디 공연예술센터가 8일 문을 엶으로써 세계정치의 중심도시였던 워싱턴은 세계문화의 중심도시로서의 새로운 면노를 갖추었다.
「포토믹」강 동안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대리석건물은 미국문화의 뚜렷한 목적을 나타내는 장소로 등장된 것이다.
개막공연으로 작곡가 레너드·번스틴의 역작 『미사』가 이 센터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 되었으며, 이를 시발로 해서 2주에 걸친 개막 축제가 벌어진다.
첫날은 「닉슨」대통령이 케네디 일가를 위해 둘째 날 참석하기로 되어 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대통령 석에는 「재클린·케네디·오나시스」여사가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채 케네디 대통령의 모친 로즈·케네디 등이 모습을 보였다 청중은 2천3백22명.
개막기념작인 레너드·번스틴의 『미사-성악가·연주가·무용가용 공연물』은 실상 재키가 부탁해 작곡한 것이다. 번스틴은 이 작품을 작곡하는데 1년 이상 애썼는데 『돈을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얽힌 작품이었다.
그런 이유 외에도 케네디 가가 가톨릭 신자이며 또 요즘 가톨릭 사상이 여러 면에서 새로운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에 번스틴이 『미사』를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미사」는 죽음의 「미사」, 진혼 「미사」는 아니고 생의 축복을 노래한 것이다.
2백2명의 출연자를 코르푸스·크리스티와 오스틴·심퍼니의 지휘자였던 모리스·페레스가 지휘했고 연출자는 고든·데이비드슨. 공연은 번스틴의 얘기대로 『일찌기 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연주』였다.
이날 밤의 행사는 워싱턴의 문화행사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5백명의 보도진과 행정부·최고 법원·대사관들의 인사들이 초청되었다.
건축가 「에드워드·듀럴·스톤」이 설계한 이 거대한 건물은 길이 6백30피트, 폭 3백「피트」, 높이 1백「피트」로, 일부 비평가들은 이 건물의 일부 비평가들은 이 거물의 몸체가 너무 험악하고 차다고 불평하지만 전문가들은 창의성 있는 순수한 설계로 칭찬하고 있다.
정부기금과 개인기부를 재원으로 건축에 소요된 자금은 6천8백만「달러」. 「카라라」백대리석 등의 기증을 치면 더 많이 든 것이다.
건물 테라스에 서면 워싱턴 링컨 제퍼슨의 기념관이 보인다.
이 건물 안에는 「오페라·하우스」 「컨서트·홀」 「아이젠하워」극장·영화관이 있으며 좌석 수만도 6천5백석에 달한다. 또 3개의 레스토랑과 미술전시장·회의실이 있으며 1천6백50대를 수용할 지하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건물 서쪽을 점한 그랜드·포여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방 가운데 하나다.
18개의 수정 샹들리에와 60피트 높이의 5개의 거울은 특히 인상적이다. 여기엔 또 「로버트·버크스」작인 케네디의 거대한 두상도 놓여있다.
원래 국립문화센터로 이름을 붙이려면 이 센터는 58년 계획되었으나 자금부족으로 66년까지 건설이 연기됐었다.
「이이젠하워」때에 시작된 건축은 케네디 존슨 닉슨 등 네 대통령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64년 미국의회는 「내셔널·컬추럴·센터」를 케네디 기념 건물로 이름을 바꾸도록 결정했으며 많은 자금부족의 곤란 끝에 개관을 보게된 것이다.
워싱턴의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는 앞으로 세계적인 대중예술의 전당으로서 크게 공헌하게 될 것 같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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