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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파동 조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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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불황이 심각하게 번지면서 사채유통에 큰 변화가 나타나 경우에 따라선 사채파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사채유통의 변화는 그 흐름을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하나는 기업불황으로 건실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증권시장으로 흘러들어 오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부실해 지는 기업들에 대해 상환을 요구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며칠전 증권시장의 모 증권회사에 5천 만원을 한몫에 맡기면서 자산주와 이율이 높은 국공채매입을 위탁한 사실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8월말부터 증권시장에 매기가 갑자기 늘어나 자산주와 국공채 값이 오르기 시작, 11일 현재 각종 채권의 시세가 3∼5%씩 뛰었고 자산주 시세도 한전주가 8월 중순에 비해 주당 40원, 중석주가 80원이 올랐다.
이처럼 자산주와 국·공채 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관계 당국은 그 원인을 사채 등 시중 유휴자금이 몰려드는데 있다고 분석, 매물의 공급확대와 함께 증권시장을 자본동원시장으로 자리를 잡게끔 육성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것은 증시 침체이래 찾아보기 어려웠던 현상이며 부동산투자와 사채 등 초과수익 부문의 정세변화에서 오는 현상으로 변화에서 오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어 당분가 계속 될 것으로 관계 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우리 나라 초기 양회재벌의 양대산파을 이루었던 동양 시멘트가 법원에 회사정리개시 신청을 제출, 10일자로 법원의 보전처분 명령이 내려진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일으켰다.
이유는 동양 시멘트가 산은·한일 및 제일·외환은행 등의 은행부채만도 27억원에 달하고, 이밖에 10억원 내외(동양 측은 25억선 주장)의 사채를 지고 있는데 최근 사채권자들이 종전의 이자 상환만으로 만족하던 상태에서 원금 상환을 요구, 이를 감당해낼 수 없어 채권은행들과 협의 끝에 회사정리개시 신청을 낸 것이다.
이 사실은 양회업계가 시설과잉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덤핑이 장기화한 이후 최근에는 활로를 찾기 위해 공판회사 설립문제와 방지방안으로 30억원의 구제금융을 당국에 요청, 협의 중인데 비추어 사정이 얼마나 급했던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비단 양화업계 뿐만 아니라 재벌급에 속하는 몇몇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부실화 기미가 보이자 사채업자들이 상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기업이 상환을 거부,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사채권자와 기업간의 알력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불황에 따른 자금난과 자금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데도 일부 사채금리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이는 사채에 대한 수요가 준데서 온 것이 아니라 사채업자들이 투입대상을 엄선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안전한 곳에는 이율을 낮추어서라도 주려는 사채업자들이 많아져 자금난 속의 사채금리하락이라는 이상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미 사채의 중압 때문에 수난을 겪은 기업이 상당한 수에 달하고 있으며 기업이 법정관리로 들어가거나 상환을 거부하는 바람에 자금을 사장하고있는 사채권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70년6월말 현재 채권은행으로 법원의 관리인지정을 받아 법정관리 중인 것만도 ▲조흥은행의 삼덕무역·보해양조·광림주조·미창방직 ▲상업은행의 대한제지·삼양전기공업·화일산업 ▲한일은행의 동양고무·대원석유·대륙교통 ▲서울은행의 동양고무(한일은행과 공동관리) 등 10개 업체이며 얼마전 커다란 진통 끝에 외환은행과 조흥은행의 공동법정관리로 넘어간 풍한산업이 있다.
그러나 풍한산업이 법정관리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기업의 법정관리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최근 동양 시멘트가 회사 정리개시 신청을 내면서 대기업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자금조달 루트로 사채가 투입된 다음 그 기업이 부실해지면 상환능력이 감퇴돼 온데다 채권자들은 채권 회수를 더 서두르기 때문에 악순환은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16억47천 만원의 사채를 조흥은행의 정기예금증서(2년 만기)로 대치하는 구제금융을 시도, 특혜시비로 발전되기까지 했던 풍한의 경우보다 동양 시멘트는 시기와 파동의 원인 등이 많은 시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정리 개시절차가 법원에서 결정되면 자본의 증감, 조직변경, 이익이나 이자배당이 정리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모두 동결되고 재산에 대한 강제 집행, 특히 조세채권의 집행까지 정리된다.
법의 목적이 재정적 궁핍으로 파탄에 직면했으나 갱생의 가망이 있는 주식회사에 대해 채권자·주주·기타 이해 관계인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업의 정리재건을 도모하자는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권자나 주주들은 채권의 비율, 또는 주식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갖게 되나 관리인이 작성, 법원의 승인을 받은 정리계획안이 집행되는 동안 기다려야하며 이 정리계획에 의해서만 채권을 상환 받게 된다.
이렇게될 때 채권자들은 정리계획이 원활히 집행되고 기업이 갱생돼야만 채권 회수가 가능해 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회사자체의 경영이 계속 악화되어 파산한다면 더 큰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하는 것이 유리해질 수도 있겠으나 채권자들이 어느 정도 이 방법에 수긍하느냐가 문제될 것이다.
만약 사채업자들이 기업부실과 부실화이후에 빚어질 정리절차를 우려하여 회수를 강화한다면 지금의 사채유통규모로 보아 큰 혼란이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현재 사채를 쓰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고 상반기 월평균 유통이 1천3백억원을 넘는 규모는 1개 은행의 총대출 규모를 상회하고 있는데 비추어 기업부실과 사채와의 상관 관계에도 보다 깊은 관심을 쏟아야할 것 같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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